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남편과 단둘이 떠난 첫 여행 하롱베이 2일째

목인 2013. 1. 27. 12:17

하노이의 뭐시기 하는 호텔(기억력 좋은 내가 이름을 까먹다니... 참 존재감이 없는 호텔이다.)에 아침이 왔다.

희뿌옇고 어수선한 풍경이다. 창밖을 보던 남편이 흑룡강이 있다 고 소리치길래 내다보니 시커먼 물이 흐르는 작은 강이 용처럼 구불구불 흘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 강에도 작은 배 한척이 떠 있다. 무얼 하는 배일까?

 

조식은 가짓수는 많은데 쌀국수 외에는 먹을 것이 마땅찮다.

빵과 우유, 커피, 그리고 쌀국수 하나 먹었다.

접시에 담긴 과일 남겼다. 과일은 맛이 너무 없다. 동남아답지 않다.

 

출발시간이 너무 여유가 있어서 호텔주위 산책을 했는데 몇걸음 걷다가 돌아왔다.

어쩐지 숨쉬기가 개운치 않은 것 같아서.

 

오전에 호치민 묘에 갔다.

하노이 시내는 개발 열풍의 한가운데 있는 듯 곳곳이 공사장이었고 트럭들이 질주하고 오토바이, 자동차, 사람이 뒤섞여 어수선한 가운데 묘한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다.

 

버스에도 호치민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어서 70년대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물어보니 자발적으로 건 것이라 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외국인은 도저히 이해를 못한다.

호치민 영묘를 보고 그의 편안하고 깨끗한 표정과 주변을 지키는 꽁안들의 불친절한 위세가 잘 안어울렸지만 호치민이 살던 너무나 소박한 집과 인근의 노랑페인트 칠이 된 주석궁, 그리고 꽁생원 분위기의 역시 노란 칠이 된 베트남 공산당 중앙당사까지 둘러보고 스트릿카를 타고 하노이시장을 둘러보았다. 오토바이와 사람과 스트릿카로 범벅이 된 시장이지만 살아있는 곳이었다. 내려서 걷기도하고 좌판의 음식도 맛보고 길가 카페에 앉아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패키지 여행을 온것이다. 모든 것이 아쉽다.

 다시 시내를 가로질러 한국식당에서 쌈밥을 먹었다.

외국 여행중에 한국 식당만 가면 나는 불평쟁이가 된다. 푸짐한 쌈에 돼지 두루치기는 한끼 식사로 부족하지 않았지만  현지 음식을 먹을 한 번의 기회를 나에게서 뺏어간 얄미운 대상일 뿐이다.

 

점심을 먹고 하롱베이로 출발하였다.

서울 대전 거리 정도의 200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지만 네시간이 걸렸다.

오가면서 정말 난잡한 운전 습관들과 무질서를 보았다.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다가 맞은 편에서 차가 오면 얼른 자기 차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들은 그러지 않는다. 추월하다가 마주오는 차를 만나면 두개의 차선에 세대의 차가 달리는 모양이다.

갑자기 늘어난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걸맞는 의식을 소유하지 못해서인가 3박4일 내내 나는 베트남의 모든 도로가 불편했다.

두세시간 달렸을까 길가 풍경은 한적해지고

마을이 가끔씩 나타나다가 조금 큰마을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하교하는 아이들, 퇴근하는 오토바이들이 구름처럼 쏟아져 나왔다.

공식 집계 9000만, 실제로는1억2천쯤 되는 인구 중 30대 이하가 9000만명이라니

덜 성숙했지만 젊은 나라의 미래가 참 부러웠다.

마을마다 학교가 있고 학교마다 아이들이 꽉 차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 저들 스스로는 알고 있을까?

 

오른쪽 창가로 석회암 지대 특유의 몽실몽실한 봉우리들이 한둘씩 보이더니 마침내 하롱시에 닿았다.

맛사지샵에 들어가 다들 맛사지를 받는데 피부 접촉을 별로 안좋아하는 신랑과 나는 거리를 걷기로 했다.

구두닦는 청년들이 원달라라면서 신랑 구두를 닦으라기에 신랑이 그러라고 했더니 닦고 나서 10달러를 내란다. 못낸다고 항의하나 5달러, 3달러, 하다가 결국 2달러까지 내려갔는데 현지가이드 아저씨가 1달러면 된다고 한다. 1달러 외엔 못준다 하니 인근의 구두닦는 청년들이 우르르 다 몰려와서 분위기가 안좋다. 가이드는 꽁안을 부르라지만 그냥 2달러 주고 말았다. 저들이 처음부터 저러진 않았을텐데 돈 맛인지 돈의 힘인지 어쨌든 씁쓸했다.

끝에서 끝까지 십분도 안걸리는 길을 걷다가 신랑의 소원대로 좌판에 앉은뱅이 의자 놓고 음식을 파는 노점에서 만두 비슷한 것 하나와 고구마 튀김같은 걸 먹었다. 소박하고 현지 냄새가 좋아서 만족, 쌀국수를 먹으러  국수집에 들어갔는데 의사 소통이 전혀 안된다.

젊은 부부가 하는 곳이라 하우마치? 정도는 알아듣겠거니 했는데 원투쓰리도 영어로는 안된다. 손짓발짓하다가 새댁이 국수 그릇하나에 내 손에서 1달러 지폐 두장을  가져가 그릇에 담아 보인다.

그래도 물있는 국수와 볶음국수, 쌀밥 볶은 것 등의 차이는 묻고 답을 했다. 만국공용어인 바디 랭귀지로. 국수는 생각보다 맛있었다. 좋아하는 고수를 듬뿍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맛사지를 마친 일행과 만나 호텔로 갔다. 하롱섬에 있는 호텔로 전망이 죽였다. 희미한 달빛에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하롱베이의 섬들이 내일을 기대하게 했다.

호텔에 단 두개있는 스윗룸이 우리 방이었다. 거실과 침실이 따로있고 바까지 딸린...

기념으로 양주 큰병 하나를 따자고 신랑이 졸랐지만 레미마르땡 미니어처 한병으로 달래기로 했다.

저녁 먹고 산책을 갔는데 인근이 골프장에 빌라형 리조트들이 있어서 한적하고 조용했다.

바람이 약간 불어 쌀쌀해서 짧은 산책으로 마감. 둘째 날이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극적인 사건이 하나.

저녁 늦게 들어온 여행객들이 아래층에 들어왔는데 날이 별로 안추워서 단열을 안해서인지 방음이 안되었다. 더구나 전망을 위해 통유리를 넣은 것이 몇층에 걸쳐 연결이 된 듯 유리창 아랫부분에서깔깔대는소리, 떠드는 소리가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참다가 참다가 로비에 내려가 직원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했더니 참 부끄럽게도

"같은 한국사람이니 룸에 직접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간곡하게 말한다.

분위기로 보아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듯...

다시 올라와 참다참다 전화를 했다.

"여기위층인데 자다가 깼다." 그리고 나서 " 여기 방음이 참 안되는것 같다. 무슨 이야기하는지 대화내용이 다 들린다."고 하자 죄송하다 하더니 조용해졌다. 그래도 가끔은 또 까르르 까르르...

이어지는 이야기에도 낯뜨거운 한국관광객이 몇번 등장할 것이다. 베트남에서 나는 내가 한국말을 쓰는 것이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참 나와서는 안될 곳에서 너무 과하게 자주 나와서 눈쌀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 외국에서 보여주었던 어글리코리언들이 아직 이곳에는 있다.

가이즈 원희씨 말에 의하면 너무 싼 값에 너무 쉽게 와서 그렇단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내일은 진짜 목적지 하롱베이에 간다.  

1월은 늘 이렇게 뿌연하늘이란다.

배트남공산당 중앙당사. 호치민 영묘 바로 옆에 있었다. 광장 주변엔 프랑스풍 건물이  많았는데 관공서나 대사관 건물들이다.

호치민 영묘 건물. 방부 처리된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대통령궁.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있는 호치민의 사저. 소박하고 검소했다.

호수가의 붓트리... 영어표기를 벚나무로 잘못 읽었는데 뿌리가 솟아나온 모습이 불상같다고 해서 이름 붙인 부처나무인 셈이다.

그들의 국보1호라는 일주사. 여기서 빌면 아들을 낳는대서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 이 나이에 아들을 또 낳으면 어떡해..

스트릿카로 달리다 맞닥뜨린 불교용품을 파는 가게가 늘어선 시장 골목

전형적인 베트남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