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8월19일 마지막 여정 요세미티와 샌프란시스코

목인 2011. 9. 25. 15:22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니 에그머니 자리가 없다, 요세미티 가는 길이 험해 멀미를 한다는데 맨 뒷자리만 남아 있었다.

할 수 없이 선이만 그 자리에 앉고 나는 앞자리 젊은 여자 일행 옆자리에 앉았다.

말을 하다 보니 공선생 후배라는 경기도에서 온 성대환선생 팀으로 아주 싹싹하고 금새 나를 보고 언니라며 따랐다.

하루내 말동무가 되어 즐거웠다. 맨뒷자리에 홀로 남겨둔 선이가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프레즈노의 한국인이 경영하는 중국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식당 옆 간이 매대에서 견과류들을 팔길래 둘러보니 별로 싸지 않고 신선해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나왔다.


버스는 새벽 어스름을 뚫고 동으로 동으로 달렸다.

캘리포니아의 아침 햇살 속에서 목장과 잘 가꾸어진 오렌지 농장, 아몬드 농장, 그리고 드문 드문 목책을 두르고 벌판 가운데 서 있는 집들이 목가적인 풍경화를 그려놓고 있었다.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아왔던 관광 열차 같은 셔틀을 기대했는데 그냥 우리 버스로 달렸다. 요세미티 내셔널파크의 입구이자 브라이덜  폭포가 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러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었지만 역광이어서 좋은 사진을 얻기란 불가능했다.

 

엘캐피탄과 하프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라는데 호주의 울룰루(에어즈락)가 가장 큰 바위인걸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울룰루 서쪽에서 더 큰 바위산이 발견되어 그것이 가장 크다고 하는데) 가이드는 이 바위가 제일 크단다, 우리 가이드인 김선용씨가 가이드를 할 시간이면 물어볼 텐데 말 붙이기가 싫어 그냥 두었다.

더우기 첫날부터 거만하고 인사도 잘 안받는 인상 별로인 기사 제임스 송하고 꽤 친한 사이인지 둘이서 속닥거리고 키득거리고 그동안 내내 한번도 웃지 않던 기사의 얼굴이 웃음이 피는 것이 너무 보기 싫어서 그냥 참기로 했다. 집에 가서 인터넷 검색해 보지 뭐. 

 

요세미티의 압권은 커다란 나무(세쿼이아만 언급하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적송도 많았다.)들로 이루어진 숲속에 있는 요세미티 폭포로 설악산의 토왕성 폭포가 아래 위로 세개에 수량은 장마철보다 더 많은 폭포와 사슴이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도망도 가지 않고 거니는 자연이었다.

인포메이션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무언가 하고 들여다 보니 트레킹 신청자들이라고 했다. 나중에 그렉 아이엘로가 진행하는 '모션'에서 요세미티 트레일에 대하여 질리도록 보았다.

우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서쪽에서 진입해서 버스로 공원 안을 달려와서 잠시 내려 걷고 다시 돌아가는데 저들은 진짜 여행을 하는구나 싶어 부러웠다. 다음에 오면 이곳의 롯지나 코테지는 예약이 아주 힘들다니 캠핑이라도 한번 해봤으면....내 말에 이선용씨가 캠핑장까지 곰이 내려온 사례를 자꾸만 이야기했다. 그래도 언젠가 한번 이곳 요세미티 트레일을 포함해서 죤뮤어트레일을 완주해보리라 꿈만 가지고 그곳을 떠나왔다.  

요세미티에서 나와 마리포사를 지나면서 잠시 내려달라고 하니 시간이 급해 안된단다.

나는 마리포사가 여자 이름인 줄 알았는데 인디언과 전쟁을 할 당시 미국 기병대의 기지가 있던 마을 이름이었다. 이 이름에 담긴 피의 의미를 알고 그많은 한국의 룸살롱이 이 이름으로 술장사를 하는 것일까?

 

마리포사를 지나 내리막길이 완만해지는가 했더니 길은 어느새 농원들 가운데로 길게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한 농장에 딸린 가든에서 배달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삭이 고추가 나와 한 접시 담아서 배터지게 먹었다. 캘리포니아 농장에서의 점심 식사.

모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처럼  햇빛이 투명하고 터질 것처럼 꽉찬 공기를 사람들이 흔들어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농원에 딸린 가게에서 구운 아몬드, 피스타치오, 말린 과일, 말린 야채 그리고 자두와 블루베리 같은 과일 몇가지를 샀는데 견과류는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바람을 음미하며 나누어 먹었다. 이전에 먹어본 적이 없는 풍성하고 고소하고 신선한 맛이었다. 좀 더 사 올 걸.  

 

점심을 먹고 마지막 여행지인 샌프란시스코를 향하면서 김선용 가이드의 밑도 끝도 없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무궁무진한 지식과 경험담이 흘러나왔다.

정주영 회장 이야기, 박정희 대통령, 루즈벨트 대통령의 무지개 이야기, 샌프란시스코의  무지개 깃발이 걸린 카페(게이들의 공간이라고 한다), 초기 골드러시 때의 관문으로서의 샌프란시스코, 멕시코와의 전쟁, 캘리포니아의 기후와 개척 시대 희생자들, 주변 도시의 이름들...

몇시간을 열강을 해도 지치지 않는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아침에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일정은 늘 역광속 아련함으로 시작한다.

 

 

 

  

버스는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If you're going to Sanfransisco 노래와 함께.

나는 내가 좋아하는 리 오스카의 샌프란시스코 베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노래 속의 풍경을 연상해보았다.

샌프란시스코가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풀빛이 누렇게 변해갔다. 골든 그래스라고 불리는 여름에 파랗지 않고 누런 이유는 겨울에 오히려 비가 많이 오고 여름엔 건조해서다. 호주처럼,,,, 습하지 않아서 사람 살기엔 좋은데 산불이 자주 나는 것이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이다.

 

샌프란시스크의 첫번째 다리를 건너 시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인근의 공공도서관에 들어가 화장실 볼 일을 본 후 그 유명한 비탈길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라길래 로프에 매달려 가는 우리식 케이블카인 줄 알았는데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 트램이었다.

언덕길을 내려 갈 땐 다 같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차체의 기둥에 매달린 채 몸을 바깥으로 내어도 괜찮은 유쾌하고 짧은 여정이었다. 

경사진 땅에 건설된 도시는 미학적으로 대단히 아름답다. 그곳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겐 고통이겠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언덕으로 오르는 길 양쪽에 꽃이 가득있는 S자 코스가 겹겹이 연결된 곳은 가보지 못했다.

베이크루즈에 탑승하기 직전 클램차우더 스프를 넣은 사워도우 빵을 사서 먹었다. 통영의 충무김밥처럼 뱃사람들이 먹기 위해 만든 빵이라는데 맛은 짜고 배가 고프지 않아서인지 통과 의례로 먹어보는 정도였다.

날씨가 추워서 덜덜 떨면서 크루즈를 끝냈다.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도 멋있지도 않은  베이크루즈에, 영화처럼 인상적이거나 공포스럽지 않은 알카트라즈를 둘러보았다. 금문교 아래를 돌아오면서 올려다 본 다리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에 건설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배에서 내려 버스로 금문교로 가려고 출발하는데 차들이 꼼짝을 않고 서 있었다. 다른 차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금문교 위에서 자살 소동이 있어 차가 밀린다는 것이다.  천국에 사는 사람도 죽고 싶을 때가 있나 보다.

그래서 먼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저녁을 먹고 어스름이 내리는 금문교 입구에 섰다.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로프의 단면과 금문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이 이번 여행의 진짜 마지막 일정이었다. 안개가 휙휙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하며 잠시 안개가 걷힌 어스름이 내리는 금문교는 사진 배경으로 무척 아름다웠다.

언젠가 '내 인생에 가장 추운 여름'이라는 제목의 샌프란시스코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시원하다 못해 추웠다. 아니 여름이라고 치지 않더라도 리얼 추운 곳이었다. 원래 추위를 안타는지라 먼저 추워하는 미선이에게 내 겉옷을 호기롭게 벗어주고는 얼마나 후회했던지...

저녁 어스름과 엷은 안개가 낀 금문교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여기도 집을 빌려 세달 쯤 살아 보고 싶다.   

마지막이라서인지 귀국 연장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애타게 후회를 하였다. 이런 곳에 와서 겨우 한나절이라니......  

샌프란시스코 시청사 앞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것 보이시나요?

<덧붙임> 2012년도에 토크 영어선생으로 온 앨리스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살다 왔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여름, 인디언서머와 지그재그웨이 그리고 리 오스카의 샌프란시스코베이 노래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엄마는 중국인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인데 동서양의 장점을 고루 갖춘 매력적인 아가씨였고 가을에 중절모를 멋지게 쓰고 딸이 근무하는 우리 학교를 방문한 앨리스의 아버지께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보여드렸다. 그는 돌아가서 고맙다는 카드를 한장 또 보냈다. 담에 이곳에 들르면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