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8월 17일 홍조 띤 신부 같은 브라이스 캐년. 기골 장대한 자이언 캐년.

목인 2011. 9. 16. 12:57

여행 일정 중 최악의 아침 식사와 최악의 잠자리는 이곳 케납의 로얄 인이다.

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화가 났지만 자기 식사도 안하고 다른 사람들 와플 구워주고 커피 따라주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김선용 가이드 때문에 화가 사그라들었다.

 

" 어젯밤에 혹시 이러이러한 일 겪은 사람 없느냐?"

로 시작, 이 곳이 고스트가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란 한다.

간밤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 미선인가 하고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던 기억, 그리고 분명히 2층이 없는 단층 건물인데 위층에서 삐걱거리던 소리가 그럼?

오가는 여행자들을 위한 카페테리아나 모텔 같은 건물만 길가에 죽 늘어서 있고 주민은 어디 사는지 집도 별로 보이지 않는데 시골 마트답지 않게 없는 것이 없는 큰 마트는 누가 이용하는 것인지 참 미국이란 나라는 난해하다.

유타와 내브래스카와 애리조나의 접경에 케납이 위치해 버스를 타고 10분만 움직여도 휴대폰의 시간이 달라졌다. 손목시계 바늘 조정 하는 것은 아예 내버려 두었다.

 

브라이스 캐년으로 가는 길은 목장과 아담한 시골 마을이 이어진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브라이스캐년 가까이에 이르자 멀리 숲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불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일부러 숲을 태우고 있었다.

병충해 때문에 큰 침엽수(소나무 비슷한)의 아래에 작은 수풀과 나무를 태워서 병충해의 이동통로와 숨을 곳을 없앤다는 것이었다. 주차장에 내리니 매캐한 연기가 자욱했다.

브라이스 캐년은 분홍빛의 첨탑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친구들이 보이지 않아 혼자서 일행과 반대쪽으로 갔다. 혼자 여행 온 것처럼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며 천천히 거닐었다. 햇볕이 몹시 뜨거웠다.

사람들이 더 많은 쪽으로 걸어오니 거기 선이와 미선이가 있었고 세종대왕과 신하들 상, 선셋 포인트쪽 첨탑들이 더욱 화려하고 군무를 추는 듯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입구의 브라이스 캐년 맛뵈기라는 작은 규모의 캐년이 오히려 숲과 조화를 이루어 더 보기 좋았다. 나중에 시간 여유가 되면 천천히 자유 여행을 다니면 이곳에 와서 캠핑을 해 보리라.

 

 자이언 캐년으로 이동하기 위해 89번 도로 케납 방향으로 되돌아나와 마운트 카멜 정션 삼거리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런취뷔페인데 개인접시에 샌드위치를 따로 서빙해주는 곳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스티로폼 도시락을 받아 남은 음식을 싸고 있길래 뭔가 헀더니 샌드위치가 남으면 싸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셋인 관계로 늘 우리 식탁에서 밥을 먹던 최모선생은 이미 샌드위치를 다 먹고도 도시락을 받아 뭘 싸려고 하시느냐 했더니 과일 싸 간댄다. 그리고 접시에 과일을 수북히 담아와서는 그걸 싸면서 과일 많이 먹으니 행복하댄다. 그렇게 과일 좋으면 마트에 가서 좀 사먹지. 기가 막히고 창피해서 정말 같은 식탁에서 밥 먹는 것이 너무 싫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오로지 사진만 찍어 댈 뿐 현지의 문화나 예절이나 역사는 아무 것도 관심없는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저러니 30개국을 다녔다면서 현지 화폐도 준비하지 않고 ATM 인출도 안되는 카드 한장 달랑 들고 와서는 돈 없다고 쩔쩔매고, 공항 통관 절차 하나 모르고 영어 한마디 못하고 새치기에다 호텔 매너도 꽝. 사람보는 눈은 다들 비슷한가보다. 브라이스캐니언에서 출발할 때 이분이 늦게 와 모두가 10분 넘게 기다렸는데 다들 많이 안좋아하는 분위기로 중학교 선생님을 하다 미국 온지 30년쯤 되었다는 할머니 두분은 내내 혀를 찼다.

 

어쨌든 점심도 훌륭했고 점심 후 마을 잔디밭에 한가로이 앉아 차를 기다렸다.

 

유타주는 몰몬교도를 빼곤 이야기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몰몬교도들의 땅이었다. 자이언 캐년도 그들의 성지 시온(ZION)의 미국식 발음이었다. 대학시절 한참 외어서 부르던 River of Babillon의 가사 When we remember the Zion이 생각나 흥얼거렸다.

자이언 캐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차창 밖 새로운 풍경에 대한 가이드의 안내 말끝 마다 와아 하는 함성들이 토 달리듯 따라다녔다. 엄청난 바위 절벽과 바위산, 그곳을 지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뚫은 터널, 터널 속에서 못보고 지나치는 경치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 뚫어놓은 터널의 창이 모두 5개가 있었는데 버스 속도 때문에 지나쳐 버리는 창을 통해 보이는 순간의 풍경에 탄성을 마구마구 질러댔다.

협곡을 빠져나오니 반대쪽 스프링데일에 인포메이션과 휴게소가 있어서 아이스크림과 물 한병을 사 먹고 방금 지나온 자이언캐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미국으로 넘어와서 처음으로 꼭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채널T에서 방영되는 트레킹 프로그램 '모션'에서 본 에머랄드 풀과  내로즈 트레일은 어디 쯤에 있는지 입구가 어딘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자연과 그 속에 점 하나도 안되는 인간의 존재가 새삼 느껴졌다.

 

 

 

자이언캐년 국립 공원의 반대쪽 입구 마을의 이름이 ROCK VILLE 이었는데 채소가 자랄까 싶은 마당에 그래도 채소를 심어 가꾸는 집이 더러 눈에 띠었다.   

라스베가스로 가기 위해 9번 도로를 거쳐 15번 고속도로에 올라 달리는데 시간이 갈수록 창밖 풍경은 건조해지고 강을 따라 이어지는 녹색 띠 지대 외에는 마을을 찾아보기 어려워갔다.

그래도 간간히 모래 벌판 위에 집도 있고 마을도 있고 그러니 한국사람들이 어딜가나 질문한다는 말

"여기 사람은 뭐 해 먹고 살아요?"

를 연발했다.

 

라스베가스로 들어서면서 줄곧 가이드 김선용씨는 벅시 시걸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나도 오래 전에 보았지만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아네트 베닝의 영화 "벅시"(남자배우는 얼굴은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이름을 까먹었다.) 와 함께.

 

라스베가스도 처음 와보는 곳이라 나름 볼 만한 것도 많았고 본 것도 많았지만 사실 한달이 흐른 지금은 거의 이렇다 할 기억이 없어 그냥 넘어간다.

김치라는 식당에 가서 맛있게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 호텔방에 여장을 푼 후 김선생님 내외분은 쥬빌리 쇼를 보러 가시고 우리는 야경투어를 했는데 돈을 덕지덕지 바른 으리으리한 호텔, 첨단의 기술을 자랑하는 분수쇼, 불빛쇼,  엄청난 인파들 외엔 기억이 없다. 별로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은 도시다.

분수쇼로 유명한 벨라지오 호텔

 

베네시안 호텔의 중앙 로비, 하늘 같아보이는 곳이 사실은 천정이고 이곳은 실내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