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밸리 갭 샤또 호텔은 아름다웠으나 조식은 형편없었고 서비스도 빵점이었다. 맛없는 빵 쪼가리에 소시지 하나 그리고 베이컨이 나왔는데 쥬스도 쬐끄만 잔에 주길래 홀짝 마시고 한잔 더 달랬더니 안된댄다. 형편없는 아침을 먹고 샐몬암에 가면 맛있는 커피와 과일가게에 들른다기에 기대를 하고 맘을 달랬다.
로저스 패스 정상에 있는 휴게소에 들렀다. 이쁘지 않고 시끄러운 동양인들이 한무리 따라 왔다. 바로 중궈들!!! 이십년쯤 전에 한국인관광객들도 저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진저리를 쳐본다. 눈을 돌리니 유난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어 봤더니 조학장님 내외분이셨다.
휴게소 앞마당에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남궁 순 기사님 말씀이 그라운드스쿼럴. 즉 땅다람쥐라고 ... 다람쥐라기보다는 그냥 쥐같다니까 맞다고 다람쥐나 쥐나 다 설치류라고 했다. 친절하고 밝고 언제나 웃는 얼굴의 기사님이 보기 좋았다. 미국에서 스티브 송인가 하는 거만하고 불친절한 기사를 볼 때 마다 우리는 이분을 입에 올렸다. 동안이어서 40초반인가 했더니 우리랑 동갑이었다.
오른쪽에 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아름다웠지만 좀 지루했다. 도시가 가까워져서인지 길가의 대부분 집들은 RV 파크며 게스트 하우스였다, 간혹 B&B라고 간판을 단 집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수수하고 편안해 보였다.
산자락이 끝나고 들이 넓어지면서 강가에 바위가 침식되면서 사람 형상을 한 후두스들이 꽤 보였다.
연어가 올라온다는 호숫가 마을 샐몬암은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이었다. 길이가 10킬로가 넘는 호수의 맨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과일가게에 들어서니 세상에 체리, 자두, 블루베리, 복숭아, 사과 ,,,, 축복받은 땅에 태어난 사람들의 행복한 과일바구니들이 가득했다. 체리를 큰 박스로 한박스 사고 블루베리도 사서 뒷마당 수도에 가서 씻어서 먹었다. 5킬로그램 쯤 되는 체리가 약 삼만원. 우리가 체리를 사자 다른 분들도 체리를 샀다, 원래 같이 나누어 먹으려고 큰박스를 샀는데 다들 사니 안 산 분들한테만 한 줌 씩 나눠 드렸다.
타이타닉산을 맞힌 상으로 인숙언니가 커피를 한잔 사 줬다. 엄청나게 많은 양이다.
과일을 과식했는지 간밤에 마신 알콜 탓인지 멀미를 했다.
캠룹스에 가면 휴게소에 들른다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문 앞에 가서 앉아 있다가 차가 채 서기도 전에 내려 화장실로 뛰었다. 엄청난 구토... 체리를 먹고 난 후의 구토는 이렇게 흉한 것임을... 그리고 아까운 체리. ㅠ.ㅠ.
속은 좀 나아졌다.
그래도 맨 앞자리에 계속 앉아 갔다.
호프에서 점심을 먹는다는데 로키를 떠나는 것이 너무 아깝고 싫어서 한숨도 자지 않고 창밖 풍경에 매달렸다. 눈사태를 막기 위해 미리 폭음탄을 쏜다는 길가의 시설들, 그리고 길고 긴 내리막길. 그 중에 남궁기사님이 갑자기
"저기 곰!"
하셔서 창밖을 보니 정말로 검정색 곰이 길가 숲 언저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계속 달려 호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인숙언니는 영어캠프를 온 한국 아이들 팀과 다시 로키로 들어간다고 한다. 밥 먹는 아이들이 무례하고 무질서했다. 초등학교 선생이면서도 저런 아이들의 모습이 싫고, 싫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무력감이 더 싫다.
도시 학교에서 근무할때 늘 절망감을 안고 보아왔던 도시 아이들의 되바라지고 이기적이고 배려심없는 모습이 거기 있었다. 이 아이들이 주축이 될 20년 후 또는 30년 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늘 암담하다.
" 얘들아 안녕? 내가 너희들하고 같이 여행을 하게 될 가이드야."
인숙 언니의 인사에
" 에이 가이드는 예쁜 여자여야 되는데.."
하는 파마에 염색까지 한 뺀질한 아이의 한마디에 우리 모두 숨이 컥 막혔다.
호프는 프레이저 강가에 위치한 중간 도시로 작은 타운이지만 모텔이나 롯지, 식당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수 있는 레저 업체가 많이 있는 곳이었다. 겨우 점심만 먹고 떠나는 것이 아쉬워 관광안내소에 들러 무료 안내책자를 하나 받고 다음에 오면 이걸 해야지 하고 들여다 보았다.
호프를 떠나 밴쿠버까지 오는 길은 경관도 별로이고(사실 갈 때는 이국적인 풍경이 신기해 내내 창밖에 시선 고정이었지만 워낙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고 오니 심드렁해진 것이다.) 그래서 지루했다, 잠도 자고 뒤쪽 항공대교수님 일행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우리 호재가 커서 이런데 와서 살면 어떨까 정보수집 차원에서 두루 살피기도 하고 그러다 오후 세시쯤 밴쿠버의 코퀴틀람 한인타운에 내렸다. 오다가 휴게소를 들르지 않아서인지 주유소 편의점 화장실 앞에 긴 줄을 섰다.
19명의 일행은 각기 왔던 자리로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 6명은 시내 구경을 하고 스탠리 파크로 갔다.
차이나타운은 어느 도시에 있든 간에 똑 같은 모습이다. 이곳의 차이나 타운은 캐나다 철도 건설시대에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엄청난 시련과 희생을 겪은 사람들이 겨우 정착한 곳이다.
시내의 시계탑은 증기로 움직이는 세계 유일의 증기 시계라 한다. 네시 정각 시계종소리를 듣기 위해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네시가 되자 정말 증기를 풍풍 내뿜더니 뿡뿡 하고 시계종소리가 울렸다.
밴쿠버 하버를 지나 도착한 스탠리파크는 방송에서는 너무너무 아름다운 도심의 공원이라더니 여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이었다, 밴쿠버항과 밴쿠버아일랜드로 둘러싸인 베이의 가운데여서 바다와 산과 도시가 어울리는 공원, 나중 샌프란시스코만의 풍경과 자꾸만 헷갈려 떠오른다. 공원에는 걷는 사람, 드라이브하는 사람, 인라인, 자전거 타는 사람,,,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이 공원 풍경보다 더 좋았다. 셋이서 사진을 찍으려고 백인 청년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찍어주면서
"워언, 투우, 쓰으리"
하길래 선이가 한국말로
"하나, 두울, 세엣"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오는데 저만치서
"쌤!"
하고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어시간 전에 헤어진 투어 일행 중 축협 출장온 팀으로 조카 기오를 닮은 친구였다. 바로 전에 허어지고도 오래 전에 헤어진 사람들처럼 반갑게 다시 인사를 했지만 곧 자기 갈 길로 흩어져 갔다.
명함을 한장 받아두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은 길 위에서 헤어지는 거라는 나만의 원칙 때문에 아마도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내 여행에는 흔한 스캔들 하나 만들지 못하고 추억만 남는다. 늘.
저녁을 먹으러 주택가로 갔다. 주택가 한가운데 한국음식 식당. 매운탕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서빙을 하는 청년이 너무 싹싹하고 친절해서 팁을 1불 더 놓았다.
저녁 식사 후 또 한참을 달려서 남쪽 국경 근처 서리의 콤포트 인에 여장을 풀었다.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지만 인근에는 아무 시설도 없어 방에서 와인 한병을 나누어 마시는 것으로 캐나다를 위한 쫑파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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