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제4일 꿈에 그리던 밴프에 왔다.

목인 2011. 9. 9. 11:51

이른 아침 버스를 타니 어제 내린 비 탓에 안개가 자욱하고 아침공기는 쌀랑했다.

가는 중에 안개가 휙휙 걷혔다 다시 덮혔다를 반복하면서 차창으로 갑자기 비위 봉우리가 구름 위에 휙 나타나기도 하고 안개가 천지를 가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비안개 속을 달려 보우강에 닿았다. 조각 같은 얼굴의 로버트 미첨과 사랑스런 마릴린 몬로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 배경이 된 곳이다.

뗏목으로 이 폭포를 지나 급류를 따라 흘러가는 두 사람과 강가를 따라 말을 타고 달리며 총을 쏘던 몬로의 남편. 어디선가 지금이라도 불쑥 말을 타고 달려 나올 것 같은 아침 강가에서 상념에 젖어 보았다.

<보우 폭포>

버스로 밴프스프링스 호텔 구내를 한바퀴 돌았다. 숙박은 제일 싼 스탠다드가 70만원 정도인데 예약을 잘 하면 30만원정도에 묵을 수 있다니 다음 번에는 시도를 해봐야겠다. 대신 런치뷔페가 5만원 정도면 된다니 그거라도 해봤음 했는데 오늘은 안된단다.

꿈에 그리던 밴프스프링스에 왔는데 내려보지도 못하고 돌아서 멀어져 간다.

호텔 건너편의 서프라이즈 코너에서 원한을 갚듯이 무수히 사진을 찍어댔다.

강과 시더 숲, 그리고 170년 전에 세웠다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어우러져 천상의 풍경을 연출했다.

<서프라이즈코너에서 건너다 본 밴프스프링스 호텔>

투 잭 레이크를 지나 미네완카 호수로 가는 길에 차들이 멈춰 서 있었다.

트래픽일 리는 없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길 가운데 산양 두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비켜 주지를 않는 것이었다. 처음엔 신기해 하면서 사진을 찍고 신이 났는데 문제는 이 놈들이 비켜 줄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거의 20분가까이 기다리는데 맞은편 차선의 차들도 경적하나 울리지 않고 산양을 쫒지도 않고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새삼 이 곳 사람들의 여유와 배려의 문화를 실감했다.

한시간이 가도 비켜 주지 않을 태세인 산양이 잠시 길가로 자리를 옮긴 틈을 타서 겨우 빠져 나갔다.

미네완카는 크루즈가 가능한 유일한 호수인데 우리는 호숫가를 한바퀴 돌아 잠시 내려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출발하였다.

<비 갠 미네완카 호수>

길이 널찍해서 고속도로 같은 길을 잠시 달려 캔모어에 갔다.

바위산이 시가지를 둘러 싼 인상적인 작은 타운인데 거기 건강식품점에서 비싼 아싸히베리를 지르고 말았다.

카드로 결제를 하는 순간에 후회를 했지만 물리지는 않았다.

캔모어는 나중에 은퇴하면 월세 같은 걸 얻어서 몇 달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시가지에 바로 붙어 있는 세자매봉이 멋있다. 블루마운틴의 세자매봉보다 훨씬 웅장하고 스케일이 커서 자매라는 이름보다는 우리나라스럽지만 삼형제봉 또는 삼신봉 따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캔모어에서 캘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캔모어 풍경>

어제 들렀던 레이크 루이스가 내려다 보이는 맞은 편 산에 있는 레이크 루이스 곤돌라 롯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뷔페인데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과식을 하였다. 여행 내내 너무 잘 먹어 뒤로 갈수록 사진 속 볼이 통통해지고 있다.

<곤돌라 전망대에서 건너편 레이크 루이스를 >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 선글라스를 끼었는데 점심 먹으면서 안경과 바꿔 끼고는 목에 걸었다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잃어버린 반지와 합쳐 너무나 비싼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곤돌라로 오르는 길은 편안하고 쾌적하고 내려오는 현지인들은 눈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어 주어 유쾌했다. 정상까지 오르는 2단계 곤돌라는 운행하지 않아 첫번째 곤돌라 내리는 곳의 전망대에 서니 건너편 흰 눈을 이고 있는 산군과 그 속에 폭 파 묻힌 듯 아련한 레이크 루이스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오후에는 레벨스톡까지 먼길을 달려야 했다. 요호국립공원은 차로 스쳐지나고 그림같은 계곡을 낀 길을 달려 자연의 다리와 에머랄드 호수에 들렀다.

수량이 엄청난 계곡 위를 통나무처럼 가로지른 바위기둥이 꼭 일부러 석축을 쌓아서 다리를 놓은 것 같다 하여 자연의 다리(내츄럴 브릿지)라 하였다. 다리도 멋있지만 계곡에서 올려다보는 산봉우리들(아무거나 2천 몇미터라 적혀있는 알림판이 있었다.)이 참 보기 좋았다.

<내추럴브릿지>

에머랄드 호수는 정말 에머랄드 빛이었다.

이전에 보았던 많은 호수는 푸른 빛이 너무 짙어 오히려 탁하게 보였는데 이것은 맑은 푸른 빛을 띠어 에머랄드 빛이 났다. 

호숫가 롯지에서 결혼식이 있어 구경을 했는데 신랑과 신부의 친구들이 유쾌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결혼을 하면 정말 잘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이 진짜로 에머랄드 빛인 에머랄드 호수>

키킹호스 계곡이나 로저스 패스 등 캐나다의 철도 건설 역사와 관련된 곳을 지났는데 모두 높고 험준한 고개, 그리고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이런 곳에 결국 철도를 건설해 내고 문명을 들인 인간의 의지와 힘이 새삼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강가의 작은 도시 레벨스톡의 중심가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마을 음악회가 곧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이렇게 작은 오지의 도시에서도 음악과 예술을 향유하고 사는 이들이 부럽다.

늘 그렇듯 시간에 꽉 매어 움직이는 패키지 투어의 일정을 원망하며 낭만적인 산골 마을 음악회를 보지도 못하고 버스에 올라 인근의 쓰리밸리 갭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빗방울이 잠시 떨어지는가 했는데 어느새 지는 해를 받아 무지개가 떠있다. 오래된 호텔(쓰리밸리 레이크 샤또)의 이름처럼 성채 같은 건물 위에 드린 무지개가 너무 아름다웠다.

철도 건설시대와 골드 러쉬 때를 재현해 놓은 고스트 타운이 있었지만 늦고 추워서 밖에서만 보았다.  

보트를 타러 나갔지만 나는 카약을 타고 싶은데 미선이와 선이는 모터보트를 타고 싶어해서 춥기도하고 모터보트의 속도감이 싫어서 나만 그냥 기다렸다. 카약을 타는 김선생님 내외분의 다정한 이야기 소리가 어스름녘의 호수위를 잔잔하게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