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여행 3일째 로키의 심장으로 들어서다.

목인 2011. 9. 7. 16:22

어제 저녁을 먹은 그 한인식당에서 미역국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캐나다 최고봉인 랍슨마운틴뷰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열번 가면 1-2번만 정상을 볼 수 있고 게다가 오늘은 구름이 끼어 있어 정상을 볼 수 있을까 회의적인 분위기였지만 가이드 인숙언니는 자기가 럭키 우먼이라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하였다.

주변의 멋지고 높은 설산들이 나타나고 저게 랍슨봉일까하는 기대를 몇번이나 뭉개더니 드디어 랍슨봉 아래에 도달했다.

인숙언니

" 와우! 보세요 제말이 맞죠? 저기 랍슨봉입니다."

정말 잘생긴 미봉이 거기 있었고 해발 3954미터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구름 아래에 선명한 자태를 드러내 놓았다.

구름이 끼었는데도 산봉우리 하나 가리지 않은 비교적 높은 구름이어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지층이 너무도 선명하여 만년설이 층계처럼 혹은 밭이랑처럼 아니 육상경기 트랙처럼 나란히 뻗어 있었다.

<랍슨마운틴>

한석봉의 어머니도 놀랠만큼 가지런하고 고르게 쌓은 시루떡같은 랍슨봉을 출발하여 자스퍼로 가는 길은 호수와 거대한 산군과 바위 그리고 폭포로 차창 이쪽 저쪽을 번갈아 보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인숙언니가

"저기 무스!"

하고 소리쳐 창밖을 보니 머리 세배정도의 큰 뿔을 가진 무스 두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천국의 풍경이 이런 걸까 싶었다.

내내 6월에 다녀온 노르웨이만 못하다고 투덜대던(?) 미선이 입에서도 드디어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자스퍼는 내 드림플레이스이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화장실 찾느라 시간을 다 쓰고 정작 시내 구경은 정말 짧은 순간에 끝났다.

시내를 오가는 여행객 차림의 사람들, 찻집, 레스토랑, 그리고 리조트....

살기엔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렌트카 여행으로 신랑하고 함께 꼭 와서 1주일쯤 묵어야 겠다.

 

오늘은 너무 좋은 풍경을 너무 많이 봐서 후기를 쓰기가 벅차다.

 

자스퍼를 지나 밴프로 향하는 길목에 애서배스카 폭포를 들렀다. 수량이 가장 적은 시기라는데도 엄청난 수량의 빙하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폭포와 폭포 하류의 강줄기가 꼭 인디언이 말을 타고 달리는 서부영화 한장면 같았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로 이동하는 중에 본 산들은 거의 수목성장한계선보다 높은 봉우리여서 한계선 근처의 나무들이 꼭 정상을 오르기 위해 기를 쓰고 기어올라가는 모습이었다.

인상적인 산 하나를 두고 이름을 유추해보라는 인숙언니의 커피 한잔이 걸린 질문에 내가 두 번 만에 맞혔다. 바로 타이타닉산.

나중 샐몬암 과일시장의 휴게소에서 정말 커피 한 잔을 사 줬다.

 

콜롬비아 빙원지대의 최대 빙하인 애서배스카 빙하가 건너다 보이는 롯지 겸 관광안내센터의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러 가지 메뉴 중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주문하면 다음 사람이 바로 접시에 담아서 내주는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고 오랫만에 호주에서 질리도록 먹었던 피쉬 앤 칩스를 먹었다. 너무 많은 감자 튀김과 맛없는 생선 튀김. 그래도 빙하를 건너다 보는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음식보다 전망을 즐기며 먹었다.

 

점심을 먹고 셔틀을 타고 빙하 바로 아래까지 가서 설상차를 탔다.

바퀴가 어마어마해보이는 버스 같기도 하고 장갑차 같기도 한 설상차를 타고 빙하로 들어서는데 거의 60도정도 되어보이는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설상차의 위력을 보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자꾸만 높이가 낮아져서 생긴 가파른 내리막길이라니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바퀴 하나가 5천만원이라는 설상차>

별 위험해보이지 않는 빙하위로 가이드를 따라 줄을 지어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보면 300미터 이상의 크레바스도 있고 얼마 전엔 빙하가 녹아 20년 쯤 전 빙하 위를 걷다 실종한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니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아싸바사카 빙하>

빙하 위에 내려 빙하수를 페트병에 받고 한모금 마셨더니 속까지 시원한 깨끗한 물이었다. 그런데 이 물이 모여 강이나 호수가 되면 왜 희뿌연 색이 되는지....

어쨌든 가진 옷 중에서 가장 따뜻한 옷을 입고도 좀 추워서 덜덜 떨었던, 그러니까 연일 무더위에 시달리던 여름에서 탈출한 최고의 피서여행이다.

 

얼음 세상에서 돌아와 또 한참을 버스를 타고 달리는 동안 창밖 풍경은 로키의 산군과 강과 푸른 호수로 이루어진 천상의 풍경이었다.

카메라 셔터에서 손을 못떼게 하는 그 풍경 속을 지나 페이토 호수에 이르렀다.

레이크 루이스가 캐네디언 로키의 호수 중 백미라고 하는데 나는 이 레이크 페이토가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호수 전망대는 알맞은 높이에서 호수를 내려다 보는 위치에 있었고 그런 방향이 호수 물빛의 푸른 빛을 가장 아름답게 반사한다고 했다. 에머랄드 빛(솔직히 에머랄드 빛이라기 보다는 불투명 수채화 느낌의 청색과 흰색 물감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불투명한 느낌의 어찌보면 탁해보여야 할 물빛이 이리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습기 없는 산뜻한 공기와 호수를 둘러 싼 로키의 산군들 그리고 쭉쭉 뻗은 시더 나무의 어우러짐이 잘 연출해낸 풍경이어서인 것 같다.

<레이크 페이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겨우 돌려 극치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레이크 루이스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본 캐슬마운틴과 원주민 소녀의 전설(누구의 눈물이라는 무슨 폭포,,,)을 들으며 누구라도 이야기 하나쯤 재미있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 내내 질리지도 않고 따라왔다.

 

레이크루이스와 호숫가 좋은 자리에 앉은 하루 숙박료 천불짜리 호텔 '레이크루이스샤또'는 아름다웠다. 수브닐샵에서 목각 몇개를 사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호텔의 정원으로 나갔다.

반짝이는 호수 너머 만년설을 인 산과 골짜기를 채운 하얀 빙하가 햇빛에 눈이 부셨다.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 루이스(같은 스펠링이라도 여자 이름일 때는 루이즈라고 한다는데 그래서 레이크루이즈라고 하는데 그래도 다들 루이스라고 부른다.)는 브리티시 콜럼비아 총독의 부인이기도 했다는데 그녀가 이 호수를 어무 좋아해서 호수에 루이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잘 태어난 사람은 아무데나 자기 흔적을 남긴다. 그래도 예쁜 이름이어서 다행이다. 내가 영국 여왕의 딸이었고 그때 이 자리에 왔다면 저 호수 이름이 레이크 말숙?  ㅋㅋ 끔찍해라.

호숫가에서 엄청나게 사진을 찍었다. 그 덕에 카약도 못타고 산책도 못하고... 그리고 돌아올 시간을 착각해서 꼭 10분이 늦었고 부끄러워라 미안해라 죄송해라 연발하면서 차에 올랐다.

<레이크 루이스>

오후 다섯시, 좀 이른 시간이지만 바베큐로 저녁을 먹는다고 바베큐장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다른 방향에서의 캐슬마운틴과 **의 눈물 폭포를 다시 보는데 별안간 비가 쏟아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쏟아지는데 꼭 우리가 차에 있을 때만 내려 우산 한번 펼 일이 없었다. 비가 금새 그치고 차창밖에 무지개가 섰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위에...

<캐슬마운틴>

바베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앨버타 스테이크일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도 늘 보던 LA갈비를 참나무 장작불이긴 하지만 석쇠위에 은박지를 깔고 구운 참으로 실망스러운 것에다가 마지막에 줄을 섰더니 몇조각 되지도 않아서 기대에 영 못미쳤다. 나는 호텔의 스카이 라운지나 아님 근사한 가든에서 질좋고 싼 앨버타 스테이크를 와인 곁들여 멋있게 먹을 줄 알았는데 이런 순진한..

그래도 그럭저럭 맛은 있었는데 문제는 모기.

호주 여행때 내내 괴롭히던 파리떼 처럼 여기 로키로 들어선 벨마운틴부터 계속하여 모기가 많았다.

이렇게 깨끗하고 서늘한 곳에서도 모기라니 의외였지만  여름철 딱 2주간 모기가 있는데 며칠 전부터 모기철이 시작되었다 한다.

포만감에 산책이라도 할까 했는데 모기때문에 포기하고 버스로 돌아가는데 건너편 산과 우리 사이의 골짜기에 또 무지개가 섰다. 너무 가까와 정말 달려가면 무지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에 두번이나 무지개를 보다니.... 깨끗한 공기 때문인지 유난히 무지개가 잘 생긴다고 한다.

 

저녁 숙소는 밴프에 있었는데 10년도 더 전 한거레신문에서 밴프스프링스호텔을 소개한 글을 보고 늘 와보고 싶었던 그 밴프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방에 짐을 풀고 밴프 시내에 가서 쇼핑이라도 할까 하여 나섰는데 비가 제법 내린다.

다운타운으로 가는 것은 포기하고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큰길가에는 대부분 INN이나 카페테리아가 있었는데  한블럭 뒤에는 예쁘고 소박한 집들이 있었다. 이런데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운아 들인가?

저 골목 끄트머리 쯤에 작고 소박한 집 한채 갖고 싶다고 했더니 밴프나 자스퍼 지역은 더 이상 건축 허가가 나지 않아 집 값이 무척 비싸다고 한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