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2016년 2월 그리운 땅끝 폴투갈(오비도스, 신트라, 호까곶)

목인 2016. 3. 5. 21:00

'그리운 땅끝'이라고 제목을 썼는데 사실 이건 EBS 세계테마기행 포르투갈편의 부제였다. 써놓고 보니 시간이 흐른 뒤에 포르투갈이 제일 그리워질 것 같다.

 아침이 되어도 비는 여전히 내린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뭔가 따다다닥하고 버스를 때리는 소리가 나서 다들 놀랐다. 우박이 쏟아진다. 진눈깨비인가 했는데 좀더 딱딱한 덩어리가 섞여 내린다.

 파티마에서 30분 정도 달려서 오비도스에 도착했다. 오는 중에 하늘이 맑아져 다행이다 했는데 웬걸 오비도스에서 내리려 하니 우박, , 난리도 아니다.

버스에서 내려 성문을 지나니 예쁜 중세 마을이 있고 저 끝에 성이 보이는데 감기로 성한 몸이 아닌 신랑 때문에 예쁜 마을길 입구의 카페로 들어선다. 우리 말고도 일행 중에 두 팀이 더 낙오. 커피에 곁들인 디저트케익이 맛있다.

 카페를 나오니 금방 또 날씨가 개었다. 성을 다녀온 일행들이 너무 좋은 전망이었다고 하니 아쉬워진다. 대신 성문 위로 올라가 길게 이어진 성곽을 걸었다. 성곽으로 오르는 돌계단 위에 우박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여행 내내 좋은 날씨에 감사하며 다녔는데 마지막 날에 이렇게 요란한 이별잔치를 열어주다니...

오비도스는 고대에 프랑스 서해안 쪽으로 내려온 켈트 족이 만든 도시로 이후에 페니키아인들이 들어와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고 로마시대에도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오비도스'라고 하는 지명은 요새 도시를 뜻하는 라틴어 '오피디움(oppidium)'에서 유래하였다. 로마 이후 서고트족(Visigoth)에 이어 8세기 초에 무어인들도 이 언덕에 요새를 건설하였다.

 1148, 포르투갈의 초대 왕인 엔리케 알폰소(Henriques Afonso)가 무어인을 몰아내고 이곳을 차지한 후 1210, 알폰소 2세는 우래카 왕비에게 이 성을 결혼 선물로 주었다. 1282년에 디오니시우스 왕이 이사벨왕비에게 결혼 선물로 오비도스를 선물하면서 이곳은 여왕의 도시라는 불리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지어졌으며 오비도스 성은 13세기 디오니시우스 왕에 의해 건축되었다 한다. 포르투갈의 도자기 타일 예술인 아줄레주(Azulejo)로 아름답게 장식된 산타마리아 교회가 있고 마을 앞에는 1570년에 만들어진 아치형의 수도교가 3km나 된다. 물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이들이 놓은 수도교를 보면 새삼 느껴진다. 물을 끌어오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과 그토록 고된 노동을 바쳐 공중에다 물길을 만들고 또 그것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피 흘리고 땀 흘리고.

언덕 위에 방앗간으로 쓰였을 것 같은 풍차 비슷한 건축물도 보이고 하얀색 묘비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묘지가 교회 아래 쪽에 있다. 유럽의 마을을 돌다보면 삶과 죽음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죽음이란 것도 두려움이 아니라 일상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진눈깨비 내리는 오비도스마을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에 우박이 쌓였다.

오래된  마을 안길

카페에서 따듯한 커피 한잔

오비도스 성벽 위로 맑은 하늘이 드러나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생각은 비슷한가보다. 

한국의 옹성과 비슷한 구조로 성문 방어를 위해 이중의 성문이 있다.

성문 입구

언덕위 풍차

오비도스 마을 입구에 위치한 묘지와 교회


신트라로 가는 길에 파두에 대해서 듣고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과 마리자가 노래한 같은 노래를 들었다. 비오는 창밖의 초록이되 차가운 겨울 풍경과 파두 가락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오비도스를 출발할 즈음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연이어 들어와 마을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더니 신트라에 오니 아예 북새통이다. 오늘이 일요일이구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지내온 2주일이다.

신트라가 리스본에서 한시간도 안걸려 당일 여행지로 인기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유럽 사람들 외에 중국 사람, 한국 사람 정말 많이도 왔다. 비가 쏟아지다 금세 그치고 어느새 또 쏟아지고를 반복하여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오면서 보니 가게 쇼윈도에 예쁜 도자기 그릇들이 보인다. 포르투갈에는 아줄레주(도자기 타일 예술)의 나라답게 예쁜 도자기 그릇들이 많았는데 갖고 싶지만 가져갈 일도 걱정이고 어제 파티마에서 산 커피잔도 있어 눈구경으로만 만족하기로 한다.

산위에 성당인지 성인지 건축물이 보였으나 올라가보지 못하고 그 산을 중심으로 신트라성 반대쪽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포르투갈 전통 음식인 대구요리 바깔레우였다. 노란색 색소가 카레가루인것 같는데 카레맛이 안난다. 우리끼리 모로코에서 먹었던 꾸스꾸스에 들어간 사프란이다 아니다  설왕설래했는데 웬걸 그냥 달걀 노른자란다. 핫소스를 포르투갈어로 삐리삐리 소스라 하는데 삐삐소스 달라면 큰일 난단다. 삐삐는 오줌이고 까까는 똥이니 아이에게 '까까 줄까?' 해도 큰일난다네. 하하. 반건조 대구살이 씹히는 맛과 고소하고 뜸이 충분히 든 밥이 정말 맛있어서 다들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신트라 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신트라 성

신트라 성에도 바라본 마을 모습

신트라 성

이곳도 전차가 다닌다.

말린 대구 살과 함께 밥을 지은 바깔라우, 빠에야보다 훨씬 맛있고 깔끔하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점심을 먹고 까보 다 로까로 향했다. 로까가 아니고 호까라고 말해야 할것 같다. 폴투갈어에서 R은 ㄹ이아니라 ㅎ으로 소리나니까 호날두, 히바우두, 다 로널드, 로버트의 폴투칼 이름이니까. 아쨌든 호까나 로까나 이름이 달라진다 해서 다른 장소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뭐.

까보 다 로까 즉 Cape of Roca, 유럽 대륙의 서쪽 끝인 포르투칼에서도 가장 서쪽으로 튀어나온 곶으로 땅끝이다.  신트라에서 서쪽으로 30분정도 떨어진 곳인데 가는 도중 비왔다 개었다를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또는 파란 하늘 아래서 망망 대서양과 해안 절벽들이, 그 사이사이 숨은 마을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과 비가 한꺼번에 몰아친다. 작게 보면 포르투갈의 끝이고 크게는 유럽의 끝. 아니 더 크게는 부산에서 또는 러시아 극동에서 시작된 거대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이다. 커다란 두개의 힘이 부딪히는 곳이라 위력도 어마어마했다.

우산을 쓰기는 커녕 맨몸으로 서 있기조차 힘든데 그래도 다들 깔깔거리며 웃는다. 땅끝탑 앞에서 날려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비바람에 견딜 수가 없어 버스로 돌아오니 또 하늘이 파랗다. 비는 조금씩 내리지만 바람이 멎고 바다가 파랗게 보여 다시 내려가서 사진을 몇장 찍었다.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대륙의 끝임을 알리는 절벽들이 빳빳하게 서있다. 대서양 파도의 위력을 보여주려는 듯.

바다 위에는 두꺼운 먹구름이 있고 그 아래 소나기 줄기가 여기서도 보인다. 비 내리는 곳과 맑은 곳의 선명한 갈래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해남 땅끝마을의 토말비와 비슷한 비석탑이 서 있고 거기에 읽을 수 없는 글귀가 씌어 있다. "유럽대륙이 여기서 끝나고 대양이 시작된다. " 라는 말이라고 한다. 리스본 벨렘지구의 성당에 바스코 다 가마와 같이 안장될 만큼 포르투칼의 대표시인이라는데 이름을 잊어 먹었다.

먼길을 왔는데 날씨 때문에 긴시간 머물지 못하고 간 길을 돌아나와서 리스본으로 향한다.

our final destination! 리스본 아니 리스보아.

카보 다 로까의 땅끝 비석

땅끝을 알리는 비석, '여기에서 대륙이 끝나고 대양이 시작된다'는 문구란다.  이따가 리스본의 벨렘 성당에 이 글을 쓴 시인의 관과 이 글귀를 다시 보게 된다.

거대한 파도가 부서지는 대서양 해안

파도는 거세지만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하고

비구름과 갠 하늘

폴투갈의 토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