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2016년 2월 스페인 여행 론다로 가는길, 세비야로 가는 길.

목인 2016. 3. 5. 15:38

타리파항에 다시 돌아왔다. 날씨는 맑고 기온도 적당하고 하늘은 스페인 하늘답다.

타리파항에서 말라가로 해변길을 달리다 오른쪽 지브롤터를 보았다. 영국이 점령하고 영국 사람들을 이주시켜 현지 주민 50퍼센트 이상이 영국인 곳, 그래서 스페인의 반환요구를 주민투표로 막아낸 지중해의 목줄 같은 곳 지브롤터.

지브롤터로 들어가는 입구의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보니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좁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땅을 넓게 쓰는 지혜가 부러웠다. 유로존 국가의 자국 여권 한장으로 북극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동으로는 폴란드나 슬로바키아 헝가리 까지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 거기다 배에다 자동차를 싣고 14킬로만 바다를 건너면 남아프리카의 희망봉까지 달릴 수 있고 그뿐이랴..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여 사실 보통사람이라면 너무 쉬운 국경 검색만 통과하면 러시아 끝 극동까지, 터키 이란, 흑해까지 갈 수 있는 곳, 다시 태어나다면 미국이나 호주 같은 큰 나라는 아니더라도 유럽의 작은 나라에 태어났으면 좋겠다.

아쉬운 마음에 특이하게 생긴 지브롤터를 향하여 수십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버스가 말라가를 지나자 갑자기 왼쪽 길로 꺾어들더니 길이 산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오른쪽으로는 날씨 좋은 날의 전형적인 지중해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전망 좋은 언덕마다 고급 주택들이 바다를 향해 있다. 저런 집에서 한달 쯤 머물며 맑은 날은 창을 열고 바다를 보고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창을 닫고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유유자적해 보고 싶다. 멀지 않은 미래 어느 날에...

길은 점점 더 가팔라지고 드디어 절벽 같은 산허리 낭떠러지 길을 달린다. 바위투성이의 산이 발칸과 비슷하기도 하고 어느 영화에서 본 듯도 싶다. 아하... 어째 익숙한 풍경이다 했더니 헤밍웨이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싸우다 돌아가서 다시 론다에 와서 머물렀고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고 한다.

어쩐지 굽이굽이 돌때마다 나타나는 산이, 골짜기가, 바위가, 그리고 좁은 길들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보았던 장면과 분위기가 너무 닮았다.

론다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상 분지 위에 생긴 도시다. 마이산처럼 생긴 봉우리도 있고 사운드 오브 뮤직에 마리아가 뛰놀던 알프스 같은 산도 있다.

맑은 날 햇살 아래 스페인 남부 풍경, 바다도 보이고 아프리카도 보인다.

지브롤터 해협과 그 건너 아프리카 땅

소가 엎드린 형상의 섬같은 땅이 지브롤터이고 영국령이다. 섬은 아니다.


론다로 가는 길은 험한 산을 넘는 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의 배경 한 장면 같은 산, 바위

산상 평원 같은 론다 시내로 들어서는 길


아찔한 협곡 양쪽에 생긴 론다 시내는 조그맣고 한적하고 깨끗하다. 헤밍웨이가 반할 만 하다.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앞 아돌프 도밍게즈에서 다들 쇼핑을 했다. 신랑이 찾던 얇고 심플한 반지갑이 있어 하나 사고 나와서 누에보 다리도 보고 유명하다던 투우사(무려 5천 몇마리의 소를 죽인 전설적인)도 보고 시간이 남아 다시 도밍게즈로 가서 인조 무스탕 재킷을 샀다. 인조지만 꽤 괜찮은 게 129유로,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옷을 안샀더라면 나중에 암스텔담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물가가 싸서 나중에 연금 받을 때 여기 와서 몇달 살아도 되겠다 싶다.

누에보 다리를 빼면 아무 것도 없다던 론다는 누에보 다리보다 주변의 산이 아름다워서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아니다.



전설적인 투우사 로메로, 아래는 투우경기장







'로망스'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하는거리의 기타리스트. 손이 많이 시려워 호호 불어가며 연주를 한다.


론다에서 세비야로 가는 길은 정말 그림 속을 통과하는 길이었다.

파란 초원, 밀밭, 목장들, 중간중간 그림같은 외딴집 마을, 작은 도시들, 넓은 밀밭 사이로 그림처럼 뻗어 있는 길, 그 길 가의 가로수인지 그냥 나무인지... 언젠가 이길을 운전해 보고 싶다. 하루종일 운전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