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 복잡하고 산만하고 지저분한 골목길을 "왼쪽, 오른쪽, 개똥 조심"을 외치며 앞사람 등짝만 따라 걷다가 돌아온 느낌이다. 가죽 염색작업장은 많이많이 실망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타이틀 장면에 등장할 만큼 세계적 명소라는데 희끄무레한 염색약이 담긴 물통 몇 칸을 먼발치서 내려다보고 증명사진만 찍었다.
그리고 쇼핑.
가볍고 부드러워 질은 좋아보이지만 그리 예쁘지 않은 검정색 미니백 하나와 파시미나 머플러를 하나 샀다. 가방은 예쁘지 않고 어깨끈이 자꾸 흘러내리며 머플러는 맘에 들지만 올이 자꾸 걸린다. 생각보다 싸지 않고 흥정도 잘 안된다.
정말로 사고 싶었던 것은 핸드페인팅 접시와 샐러드볼인데 앞사람 놓치면 골목에서 못나올 수도 있다는 협박 때문에 앞사람만 따라 다니느라 눈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사실 다녀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디로든 계속 가면 골목의 끝이 나오고 큰 길에 나오면 여느 도시처럼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좁고 지저분한 골목들 안에도 사원도 있고 식당도 있고 호텔도 있고 사람이 사는 여염집도 있었다. 시장 사람들에게 기대만 주고 정해진 가게 외 다른 곳에선 사탕 하나 빵 한쪽 안사는 한국 관광객이 저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회교사원 앞에서 눈이 먼 사람이 구걸을 해서 5유로를 주었더니 가이드가 나를 본다. "주면 안돼요?" 하니 "아뇨 오히려 감사하죠." 한다. 가끔씩 현지 가이드나 호텔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아이들에게 팁을 주면 버릇된다고 싫어하던 가이드들이 있어서 물어본 거였는데 안심이다. 차를 타러 가는 길에 지갑을 사라고, 열쇠고리를 사라고 아이들이 자꾸 따라왔다. 사고 싶은 물건을 팔면 좋으련만 필요도 없는 선명한 컬러의 지갑을 몇 개씩이나 사라하니 미안하지만 애써 외면하다. 한 아이에게 1유로를 주었는데 아뿔싸 또 다른 아이가 버스까지 따라오면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1유로만 달라 한다. 대강 해석하면 "한국 아줌마, 좋은 사람 같아 보여요. 제발 1유로만 주세요." 버스 시간도 촉박하고 많은 아이들이 지갑을 사라고 따라와 애써 외면하고 돌아오는 내내 그 아이의 눈물이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 같던 눈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휴게소 식당의 타진 요리 장면
페스 구시가지 입구
구시가지 안의 이슬람 사원
가죽 염색으로 알려진 바로 그 곳, 아래 건 사진을 사진찍은 것임.
페스 주변의 산과 묘지와 사원 주택들
말린 과일들, 주로 대추야자
빵가게, 나는 저 빵이 제일 맛있더라.
페스를 떠나 탕헤르로 오는 길은 내가 예상했던 셰프샤우엔 쪽 좀 험하지만 짧은 길이 아니라 라바트를 경유하는 고속도로였다. 페스 출발 후 두시간 정도는 사막은 아니나 밭농사, 양 목장 같은 스텝지대였고 해안이 가까와질수록 숲이 짙어지고 경작 작물도 다양해졌다. 올리브나무, 코르크나무, 선인장, 배추나 파슬리 비슷한 채소류 등등,,, 빈밭이나 공터에 말뚝을 박고 그물을 치고 축구를 하는 장면은 너무 자주 보게 되고 마을마다 아이들이 많았다.
코르크나무 숲
창밖의 풍경은 흥미로웠지만 그래도 탕헤르까지는 너무 멀었다. 12시 반쯤에 휴게소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로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배가 몹시 고팠는데 어느 휴게소에 내려준다. 모로코의 휴게소는 시설이 꽤 좋다. 휴게소를 전문으로 운영하는 꽤 큰 회사 그룹이 있다던데 오너가 모로코에서 몇번 째 안에 드는 부자란다. 빈대떡도 있다길래 가보니 크레페를 한다. 다들 배가 고팠는지 크레페 앞에 줄을 섰다. 내가 여섯 번 째, 기다리는 중에 신랑을 대신 세워놓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여전히 여섯 번 째다. 여행에서 만나 이야기를 자주 주고 받은 익산댁이 웃으면서 아직 하나도 다못했다고 한다. 하나 만드는데 무려 5분이상 걸리니 겨우 20분 머무는데 포기하자 하고 그냥 빵과 커피를 사서 나눠먹고 차 버스 앞에서 아이에게 딸기 한 팩을 1유로에 샀다.
탕헤르에 돌아오니 거의 8시다. 호텔 객실이 아라비안 나이트 풍이 팍팍 난다. Y자 형태의 건물 가운데 부분 꺾이는 위치의 방을 배정받았는데 객실이 크고 티테이블도 큼직하고 1인용 소파가 두개. 3인용이 하나, 벽면에 붙여 만든 나무의자 같은 곳에 방석이 놓인 긴 의자가 3인용. 침대 협탁 대신 쓸 것 같은 소지품 선반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게다가 창밖이 바로 바다여서 밤새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은 소음. 모로코는 호텔도 식사도 기대 말라더니 오히려 훌륭하다고 신랑이 좋아한다.
탕헤르 호텔의 촌스럽지만 정감가는 실내
저녁 식사는 따진요리로 쇠고기 갈비찜 비슷한 것이었는데 맛있었다. 나는 현지 음식은 벌레 요리만 아니면 오케이인데 맛까지 좋으니 더없이 행복하다.
다음날 아침, 이틀 전에 타고 온 배로 다시 타리프로 돌아왔다. 갈 때보다도 더 하늘이 청명하여 건너 스페인 산도 선명했고 뒤돌아 보면 아프리카 해안도 깨끗하고 아주 가까이 보였다. 30분 늦게 출발하여 열시 반에 도착하였다.
다시 그레고리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니 정말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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