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2016년 2월 스페인 여행의 종착지, 리스본

목인 2016. 3. 5. 21:00

 

잠시 맑았다가 다시 비바람이 거세진 호까곶을 뒤로 하고  진짜 마지막 방문지인 리스본(현지 이름 리스보아)을 향해 출발했다. 

30분 남짓 오는 동안에도 날씨는 변덕이 죽 끓듯 한다.

한 때 해양강국으로 번성했지만 18세기, 수도인 리스본을 완전히 파괴시켰던 대지진과 이어진 살리자의 독재정치로 유럽 변방의 소국이 되어버린 포르투칼의 변두리 마을은 확실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해변 도시랑은 때깔이 좀 달랐다. 마누엘식 주택으로 예쁜 집들도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윤기가 없어 보였다.

마카오나 브라질을 식민지로 두었던 나라, 어쩐지 시적이고 낭만적인 어감의 리스본을 수도로 하는 나라,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배운 해양왕 엔리케와 60년대 독재자 살리자, 그리고 카네이션 혁명, 최근에 꽃보다 할배 덕분에 한국에도 유명해진 에그타르트, 세계테마기행에서 본 인상적인 나무 코르크. 이것이 내가 아는 포르투갈의 거의 전부이다. 

아, 포르투 와인, 인도항로를 발견한 바스코 다 가마도 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바이런의 시 '차일드 헤롤드의 순례'를 낭송했다.

빗속을 달리는 버스에서 시 낭송을 듣는 맛도 괜찮았다.

 

인간의 발자국은 네 위에는 남겨지지도 않는다.

 너의 해원은 인간의 전리품이 되지도 못한다.

 너는 파도를 일으켜 그를 흔들어 놓는다.

 인간은 악의를 가지고 권력을 휘들러 지상에 파괴를 초래하지만,

 너는 이 모든 것을 경멸한다.

 

아주 긴 시였는데 기억하기는 어려워 검색을 해 찾아보았으나 이때 들은 시 부분은 찾을 수 없고 어느 분이 올린 글 중에 이 부분이 있어 따왔다. 바이런이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던 그 시, 무명의 바이런을 일약 스타로 만든 그 시다. 

 

8세기부터 무려 800년 가까이 이곳을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이 약해진 이베리아의 춘추전국시대에 카스티야 레온을 지배하던 보르도 지방의 엔리케 백작이 사위인 엔리케 알폰소가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우자 선물로 준 땅이 포르투갈 기원이다.

엔리케 알폰소가 이 때 이슬람과 싸워서 빼앗은 성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익히 보았을 현재 포르투갈의 국기에 그려진 성이다. 카스티야 레온과 경쟁하다  교황, 아라곤의 왕, 카스티야 왕이 조약을 맺고 독립을 인정받아 1148년 포르투를 수도로 건국하고 1249년 리스본으로 수도를 옮겼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이 포르투에서 기원하였다. (더운 항구라는 뜻의 포르투 깔레)

건국은 했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으며 1378년 반란으로 인해 왕이 죽고 난 후 후세가 없어 1385년 주앙1세가 아비스 왕조를 세운다.

이후 바다의 왕자 혹은 해양왕이라 불리는 엔리케가 등장하여 조선이나 항해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항해 기구와 지도 제작에 힘쓰며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포르투갈은 발달한 조선 항해술을 활용, 바다로 진출하여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며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린 강국으로 발돋움하여 마누엘1세 때 전성기를 맞는다.

새로 개척한 식민지로부터 향신료와 노예를 들여와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하는 사업으로 많은 자본을 축적하는 시기가 마누엘 1세때로 포르투갈의 전성기이다. 사람들은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여 고급스럽고 세련된 양식의 고급 주택들이 짓게 되고  그것이 바로 지금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포르투갈 건축인 마누엘 양식이다.

 

포르투갈의 황금시대였던 1580년, 세바스찬왕이 후사 없이 전사한 후, 스페인왕 필리페 2세에 의해 스페인에 합병되어 80년간 식민지가 되고 만다. 1640년 영국과 네덜란드의 도움을 받아 독립전쟁에서 승리하여 다시 독립국이 되지만 1755년 9.5도 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바다 건너 모로코까지도 막심한 피해를 입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진이었다. 리스본의 재건을 위해 주제1세가 기용한 뽕발 공작은 폐허가 된 리스본을 완전히 부수고 도시를 다시 만든다. 지금 우리가 보는 리스본이 그 때 재건된 도시이다.

지진 이후 재건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 지출과 1825년에 국가의 주 수입원이었던 브라질 독립으로 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당시 인구의 20%인 100만이 넘는 사람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제제가 만난 맘씨좋은 포르투가 아저씨도 이때의 이민자 혹은 그 후세일지 모르겠다.

1961년 시작된 살리자의 독재정권은 포르투갈의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살리자의 사후 무능한 정치권에 반발한 1974년 군부 쿠데타 때 시민들이 군인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매달아 유혈사태를 막았다는 유명한 카네이션 혁명은 우리가 접한 포르투갈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바다 쪽에서 리스본으로 들어오는 입구가 벨렝(Belem)지구이다. 

대서양으로부터 배가 따구스강(스페인에서는 따호강이다. 똘레도를 감싸 흐르던 바로 그 강.)  입구의 넓은 만으로 들어오면 맨처음으로 벨렝탑을 만나게 된다. 항해에 지친 선원들을 맞이하는 여인의 치마자락처럼 생긴 탑이다.

탑 주변 넓은 평지의 공원에는 올리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전차가 다니는 큰 길과 만나는 곳에 제로니모 수도원이 있다.

이곳도 비와 파란 하늘이 순식간에 교차하는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리스본을 찾는 여행자의 대부분이 꼭 들른다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지나온 스페인의 매력적이고 웅장하거나 따뜻하거나 아름답거나 한 성당에 비하면 작고 아담한데 대서양에서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여 포르투갈의 황금시대를 연 바스코 다 가마와  포르투갈 국민시인이자 호까곶의 비석에 새겨진 "대륙이 끝나고 대양이 시작된다"는 시를 쓴 시인 카몽이스가 안장되어 있다. 

수도원 바로 옆 시가지로 이어진 들머리에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파스테스 데 벨렝이 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달걀 흰자로 수녀 복을 빳빳하게 풀을 먹이는데 사용하고 남은 노른자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커스타드 크림을 넣어서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늘 에그타르트를 사려는 긴 줄 때문에 파란색 간판을 보지 않아도 금방 찾을 수 있다. 우리도 줄을 서서 에그타르트를 사 가지고 커피를 마시며 먹으려 갔더니  자리나기를 기다리는 긴 줄이 또 있어 바로 옆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와 함께 먹었다. 달콤하면서도 지나치게 달지 않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워 정말 맛있다. 8대에 거쳐 200년동안 이렇게 장사가 잘 되었다니 얼마나 돈을 벌었을까? 

리스본 행정 중심지인 로시우 광장도 들르고 뽕발공작이 계획하고 건설했다는 리스본 시내 중심가도 둘러보고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올라 사진을 찍었고 그것이 이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중국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홀리데이 인 리스본 호텔에 일찍 여장을 풀었다. 내일 아침 5시 비행기를 타려면 2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대강의 짐을 정리하고 가방도 거의 싸 두고 잠을 청했으나 아쉬움 때문인지 쉬 잠들지 못하였다.

 

 

대양에서 들어오면 맨 처음 만나는 벨렝탑

 

벨렝탑과 바다와 광장

 

엔리케와 바스코 다 가마를 비롯한 13인의 상이 새겨진 발견의 탑

 

올리브나무 숲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 광장과 분수대와 나

 

아래는 수도원 내부

 

포르투칼의 국민시인 루이스 바스 데 카몽이스의 석관과 묘비명

 

바스코다가마의 묘비명(위)과 석관(아래)

 

수도원 외관

 

시티투어를 하는 2층버스는 어느 도시나 다 비슷하다.

여기서 에그타르트를 사먹으려면 긴 줄을 서야하지만 포장만 하려면 이 카운터에서 주문하면 빨리 살 수 있다.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바로 그 빵집 , 빠스테 드 벨렝

 

넓은 실내에 커피 마시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이 꽉 찬 빵집 실내 

 

내가 좋아하는 파랑색 차양, 간판, 철제난간 다 리스본스럽다.

 

에그타르트와 스타벅스 커피, 빵집 옆의 스타벅스가 초라해 보임.

 

해양왕 엔리케의 동상

 

시내로 들어가서 -  로시우 광장과 의사당 건물

 

 

 

 

 

리스본 중심가 거리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리스본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