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즈크릭으로 가는 길에 어떤 차가 우리 뒤를 급하게 따라왔다. 상향등을 번쩍거리고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뭐라 소리 지르는 것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여기도 저런 사람이 있네. 급하면 지가 추월하지 왜 저래?’
거의 10km나 따라와서 기어이 우리 차를 세우길래 시비가 붙으려나 하고 잔뜩 긴장한 우리에게 들린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Your car smells hot"
출발 전 점검차 들른 정비소에서 오일을 너무 많이 넣어서 그것이 엔진 쪽으로 넘쳐서 타는 냄새가 약간 나는데 그걸 알려주려고 휴게소에서부터 따라왔다.
“Thank you. but it has no ploblem."
좋은 시간 보내라고 인사하고 헤어지는데 그냥 기분이 좋다.
2. 투무트라는 산골의 읍 정도 되는 곳을 지나다 마을 중앙의 잔디구장에서 크리켓 경기를 구경했다. 나이도 제법 든 사람들이 모여서 얼마나 재미있게 경기를 하는지 경기 규칙도 방법도 잘 모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국토가 넓어서 사람들의 심성이 넉넉하고 여유로와 보였다. 그래서인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고 누구에게나 쉽게 말을 걸고, 눈만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넨다. 길가에 설치된 간이조리시설에서 식수를 받고 쓰레기를 버리려 봉지를 들고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나보다 먼저 쓰레기를 넣은 배가 불룩한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쓰레기수거함 뚜껑을 계속 들고 서 있다가 내가 쓰레기를 넣자
“하이, 하와유”
하고는 쓰레기통 뚜껑을 닫는다.
‘아하, 나를 위해 이 뚜껑을 들고 서 있었구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을 만나면 나도 저렇게 해야지 다짐을 했다.
3.고산마을 오메오는 1930년대와 60년대에 큰 산불로 완전히 타버렸다가 재건된 마을인데 몇 안되는 집들로 이루어진 작은 거리에 갤러리가 몇 개나 되고 체리나무 가로수에 키 작은 아이도 손만 내밀면 딸 수 있는 먹음직한 체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따 가는 사람이 없었다. 청계천가에 심어진 사과나무도 사과가 다 익을 때까지 이런 풍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 흄하이웨이의 중간 부분 절반 정도는 왕복3차선이다. 바깥쪽 차선 두개는 오가는 차선이고 가운데 차선은 양쪽에서 번갈아 추월차선으로 사용하는 참 합리적인 구조였다. 우리나라 도로처럼 차가 많지도 않고 또 거리는 얼마나 먼가? 그런데 대부분의 차들은 바깥쪽 차선으로만 달리다가 아주 느린 트럭을 만나면 잠깐 추월차선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바깥 주행차선으로 나와 달리는 것이다. 중앙 차선이 반대쪽의 추월차선 일 때는 앞에 느린 차가 가더라도 자기 쪽 추월차선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앞차를 따라 가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완만한 고개를 올라 정상쯤에 이르면 거의 십킬로미터 이상의 고속도로가 눈 앞에 길게 이어지고 그 길위의 차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가장 자리 차선으로만 달린다. 간혹 한두대 추월선에 나왔다 다시 바깥차선으로 빠지는 모습이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5. 붐비는 휴게소 편의점에서 마실 것을 사는데 계산원이 빠른 말로 뭐라뭐라한다. 잘 못 알아들으니 다시 한 번 천천히 이야기해주는데 게토레이 한 병은 1.5불인데 두병에 2.5불이니 두병을 하겠느냐 한다. 머뭇거리는 새에 내 뒤에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줄을 섰고 미안해 하며 뒤를 돌아보자 모두들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하면서 괜찮다는 제스쳐를 한다.
“아줌마 좀 빨리 합시다”
“거 바쁜데 짜증나네, 빨리 좀 안하고 뭐해요?”
이런 말에 익숙해 있는 나 한국 사람에게 이런 여유와 배려는 낯설면서도 부러운 풍경이었다.
6. 주유소를 들어가는 입구에서 한국산 액센트를 운전하는 할머니가 운전이 서툴러 뒤로 여러 대의 차들이 밀렸지만 아무도 재촉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땡볕아래 건물 그늘에 공간이 있으면 한두대 차를 댈만도 한데 반드시 주차선 그어진 곳(대부분 휴게소 건물 반대편의 넓은 마당 건너, 차를 대고 땡볕속을 걸어와야만 하는) 에만 차를 대고, 아이를 혼자 차 안에 두고 내리면 어디선가 경찰관이 나타나 가차 없이 딱지를 뗀다. 약자를 보호하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정해진 규칙은 꼭 지키려하는 성숙한 선진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비행기 안에서 떠오른 것이나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까지 머리에 선명하게 남은 것은 아름다운 바다나 이국적인 풍경 보다 사람들의 친절한 미소, 남을 배려하는 마음 이런 것이다. 우리 세대는 가난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데만 치우쳐서일까 이런 여유가 없다. 우리 보다는 조금 여유롭게 자라는 지금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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