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호주 여행기 2부

목인 2008. 6. 19. 14:31

유유자적의 시간에 싫증이 날 무렵 우리는 용기를 내어 형님댁 자동차(뽑은지 일년도 안된 새차 토요타 크루거)를 타고 가까운 리버풀과 뱅스타운에 다녀왔다. 레바니스들이 점령한 뱅스타운이라고 해서 좀 쫄았는데 그저 평화로운 변두리 도시의 일상을 보고 왔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한국인슈퍼(우리 동네 홈마트의 절반도 안 되지만 한국 물건 없는 것이 없다.)에 들러 포장 김치, 라면, 즉석된장, 컵라면, 햇반 따위를 사서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우리끼리 여행을 떠났다. 장거리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부담스런 크루거 대신 5년쯤 탄 캠리를 끌고 나섰다.  

 

지난번에 시누님이랑 같이 갔던 흄하이웨이를 타고 시드니를 빠져 나왔다. 캔버라와 멜번 갈림길에서 지도를 놓고 고심하다 지난번에 가지 않았던 호주의 행정수도인 캔버라에 갔다. 연방청사와 대사관 거리 그리고 호수 공원 커먼웰쓰에서 짧은 호주 역사에 관한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니 딱히 더 갈 데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을 이곳을 보고 창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창원과 비슷한 점을 찾으려 했는데 길이 반듯반듯하고 호주답지 않게 아파트가 좀 있다는 것 외엔 모르겠다.

카페테리아에서 샌드위치와 함께 차 한 잔을 마시다가 남편이 느닷없이

“이게 다가?”

했다. 샌드위치가 작다는 말인 줄 알고

“하나 더 시켜요?”

했더니 

“그기 아이고 캔버라가 이게 다가?”

하하, 정말 그랬다. 이렇게 큰 나라의 수도인데 이게 다라니, 정말 캔버라는 그게 다였다. 

연방청사와 의사당을 보며 호숫가 공원을 걷는데 갑자기 몸에서 에너지가 쑥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현기증이 밀려왔다. 나무밑 벤치에 아들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따뜻하고 통통한 손으로 등을 두드려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니 금새 괜찮아졌다. 이날부터 우리 아들 손은 "엄마 진통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현기증이 가라앉고 시간도 흘러 다시 지도를 펴놓고 어디를 갈까 들여다보다 그레이트알파인로드를 따라 가보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정말 한가롭고 오가는 차도 별로 없고 이 길로 계속 가면 과연 마을이 있을지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지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해질 무렵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노을을 넋을 잃고 보기도 하고 사방 눈 닿는 곳엔 사람 사는 흔적 하나 없이 완벽한 황무지를 지나고 그러다 도착한 곳이 하이컨트리 마을인 아다미나비였다. 이곳 하이컨트리는 호주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유일한 지대로 스노이마운틴 자락의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지만 고원이 워낙 넓어 그냥 들판 가운데 마을 같았다. 겨울엔 스키 인파로 북적거리는 곳이 여름에는 썰렁한 만큼 한가한 마을이다. 마음씨 좋은 모텔 주인 아저씨는 이방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민간대사 같았고 자꾸만 말을 걸어 왔다.

 다음날 아침 브라이트 탈빙고 투무트 같은 에쁘거나 혹은 독특한 이름의 동네를 지나왔다. 탈빙고는 스무채 정도의 작은마을이었는데 여기서 주유를 했다. 기름값이 시드니보다 거의 리터당 20센트 이상 비쌌다. 1불 내외니 20%쯤 비싼 셈이다. 건물임대로보다 수송비가 비싸서 내륙으로 들어갈 수록 기름값은 비싸졌다.

주유소 앞이 깊은 호수였는데 자연호수가 아닌 듯 하고, 공원 옆에 세워진 커다란 마을 안내도가 있어 거기로 가보니  탈빙고 파워스테이션이 있었다. 파워스테이션이라 하니 우리 아들은 게임기 공장이나 연구소가 있나보다 해서 웃다가 가보니 수력발전소였다. 흄댐의 물과 하이컨트리의 표고차를 이용하여 호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발전소가 생겼다고 한다.

탈빙고에서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투무트를 거쳐 흄하이웨이 도로변의 잠수함이 있는 홀브룩으로 나왔다. 투무트는 사람도 마을도 딱 내 이상형이었다. 거기서만난 친절한 호주아저씨 이야기는 여행기 끝무렵에 다시 등장할 예정이다.

흄하이웨이를 달리다 우동가에서 유명한 햄버거를 먹었다. 우연히 들어갔는데 귀국 후 검색을 해보니 꽤 알려진 맛집이었다. 버거킹의 호주 브랜드인 헝거리 잭스 나 맥샵(커피와 햄버거를 파는 맥도날드)에서는 맛볼 수 없는 고기 자체의 맛을 살린 큼직한 수제버거였다.  우동가에서 어제 갈림길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브라이트로 가는 그레이트 알파인 로드를 타고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다.

 

 폴즈크릭에 리조트 표시가 있어 갔더니 여름스키리조트는 역시 안내원조차 없이 문읃 닫았고 지도에 표시된 보공빌리지(보공산은 1950미터의 높은 산인데 산불로 쓰러진 거목들의 잔해가 처참했다.)로 갔더니 금요일이어서 역시 빈방이 하나도 없다. 모텔 주인들마다 방을 구해줄까고 물었지만 우리는 비상용 텐트를 치기로 맘을 먹고 적당한 위치를 찾다가 카라반 파크를 발견하고 들어가니 이미 저녁 8시, 성수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왔다갔다 하는 우리를 보고 카라반에 묵고 있는 40대 가량의 마음씨 좋아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왔다. 이러이러해서 여기 텐트를 쳤으면 하는데 주인을 찾을 수가 없다 하니 관리사로 가서 문을 쾅쾅 드드려 사람을 기어코 불러낸다. 이분들은 한국에서 온 여행객인데 텐트를 쳐도 되냐 하니 주인아주머닌 흔쾌히 승낙하시고 더운 물 나오는 샤워장 까지 쓰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정말 친절했다. 쪼끄만 텐트를 치고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지려고 한다. 너무 많은 별이 하늘에 매달려서 하늘도 무거운 듯, 손을 펴서 건드리면 좌라락 쏟아질 것 같다. 

 아까의 그 아저씨가 구운 햄과 쇠고기와 와인을 한병 들고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남편 보다 두살 위인 그는 시드니에 사는데 주말마다 부인과 둘이서 여행을 나온다고 한다. 한국은 가본 적은 없고 일본은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호주에서 일본의 위상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그들은 일본을 힐링할 수 있는 이상향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 일본에 오면 한국도 들르라고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아침이 새 울음과 함께 밝아왔다. 이슬 젖은 텐트를 나와 살펴보는데 주변에서 듣기 좋은 조용한 소음이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수많은 자전거의 행렬이었다. 몇십명은 넘을 것 같은 사람들이 조용하고 경쾌하게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부러웠다. 자전거의 행렬이 지나간 쪽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하였는데 코시어스코 산 가까이로 난 고개를 넘어 빅토리아주로 가는 알파인로드였다. 드디어 산맥을 넘었다.

 

알파인로드는 살기 좋은 동부의 해안지역과 내륙의 반건조지대를 가르는 그레이트디바이딩 산맥을 넘는 길이다. 호주 최고봉인 코시어스코산 가까이를 지나는 스노이마운틴 자락의 도로 최고점 해발은 거의 1900미터, 우리나라의 고갯길과는 규모가 달랐다. 산줄기 하나를 잡아서 아예 지능선을 타고 곧장 오르게 되어 있는데 워낙 길다보니 넘는 데만 거의 다섯 시간이 걸렸다. 고개 정상에 오르니 문 닫은 스키장이 이 나라의 풍요를 말해준다.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는 여름에도 스키장 시설을 이용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들을 하지만 여긴  굳이 이곳이 아니라도 갈 데가 너무 많아서인지 여름에는 아예 운영을 안 한다. 문 열린 매점이 하나 있어 커피 한잔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나오니 파리 떼가 덤벼든다. 목장이 많아서인지 내륙지방에는 가는 곳마다 파리가 많았다.

 

“산은 우리나라만 못하다.”

커피를 마시던 남편이 한마디 하는데 나랑 아이랑 동시에 맞장구를 쳤다.

“진짜 그래.”

정말 그랬다. 우리나라처럼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 계곡이나 짙은 숲이 없었다. 여름이 건조해서 인지 잔디도 누렇고 숲이나 그늘이 있어도 듬성듬성하고 계곡물은 유칼리나무 수액 때문에 불그죽죽하고 잡풀이 우거져 사람과 친한 그런 계곡이 아니었다.

 

겨울에 스키를 탈 수있는 유일한 지역이라 그런지 여름비수기여서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인프라는 꽤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공항도 있고 리조트와 샵이 즐비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그 곳은 고스트타운 같았고 수많은 문닫힌 집들 사이에 유일하게 문을 연 간이 매점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마도 간간히 고개를 넘는 차들을 위한 가게인 모양이었다.

스키장을 지나 내리막길은 거대한 산불의 흔적 연속이었다. 첫번째 마을(빅토리아주 쪽에서 올라오면 마지막 마을) 오메오는 이십여가구 정도의 작은 타운이었는데 면사무소 같은 행정관청도 있고 마트도 갤러리도 레스토랑도 다 있었다. 누가 손님으로 오는지 원... 1930년대의 큰 산불에 대한 안내판이 있어서 읽어보니 산불로 마을이 전소된 것이 세번이나 된다고 한다. 여름에 건조하니 사람 견디기는 좋은데 산불에는 취약하니 우리는 지구촌 뉴스에서 끊임없이 호주 산불 소식을 듣는다.  캘리포니아처럼....

수퍼에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체리나무아래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체리가 주렁주렁 열렸는데 아무도 따먹지 않아서 바닥에 떨어진 것도 엄청나게 많았다. 몇개 주워서 먹어보니 꼬 달았다. 마트에서 파는 그런 체리는 아니고 우리가 버찌라고 알고 있는 벚나무 열배보다는 조금 큰 오디맛이 나는 열매였다.

이나라는 어디를 가나 한적하고 깨끗하다. 한적한 거리의 벤치에서 세 식구가 어깨를 맛대고 낮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