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호주 여행기-1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다.

목인 2008. 6. 17. 23:43
 친구들은 나를 보고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고 친정어머니는 돈 벌어서 길바닥에 다 뿌린다고 늘 애를 태우셨다. 그렇게 타고난 걸 어쩌랴? 여행의 기억이 예쁜 옷이나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보석보다 더 강렬하고, 언제나 흥미롭고, 무엇보다 훨씬 행복한 것을.

도회지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떠나오기 직전 우리 가족 셋 모두에게 자유 시간이 생겼다. 아들이 더 크면 함께 할 기회가 없어지기에 더욱 귀한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 해보나 마나 “어디든 떠나자” 였고 마침 시드니에 사는 시누님도 뵐 겸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월 초 영하 19도의 소한 추위 속에 두터운 외투를 입고 출발하였는데 시드니는 한창 휴가철이었다. 40도를 넘나드는 한여름의 시드니 공항은 강렬한 햇빛 아래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습도가 별로 높지 않아 햇볕 아래선 몸이 타 버릴 듯 하다가도 그늘에만 가면 견딜 만 했다.


첫나들이는 시드니 여행의 교과서 같은 블루마운틴이었다. 하늘의 해는 북쪽에 떠있고 자동차 주행 방향은 우리나라와 반대여서 자꾸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뭔가 어색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블루마운틴은 이 곳 숲의 대부분을 이루는 유칼립투스나무의 수액이 증발하여 공기 중에 떠 있어 산이 파르스름하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초기 이민자들이 개발한 광산채굴이 한창일 때 사용되었던 궤도차를 타고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서 부시트레킹을 했는데 바깥은 기온이 40도나 되지만 숲 속은 서늘했다. 그러나 케이블카의 투명 바닥으로 내려다 본 100미터가 넘는 아찔한 협곡과 그 한쪽 절벽을 떨어져 내리는 카퉁가 폭포만 인상적이었을 뿐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세자매봉이나 에코포인트 같은 것은 설악산 권금성이나 울산바위 전망대보다도 볼품이 없었다. 다만 숲의 규모나 거의 직선에 가가운 산상평원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시야는 끝이 없었다.

날씨가 더워 매점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카운터로 가니 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들어가서 3-4분정도 먹을 것을 고르는 사이에 다섯 시가 넘었고 서머타임 실시로 아직 해가 중천에 있지만 정확하게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마감을 해버린다. 할 수 없이 물건들을 도로 갖다놓고 나와 자판기에서 뽑은 탄산음료 하나로 만족을 해야 했다.

 

넷째 날, 시드니 북쪽으로 난 프리웨이를 자동차로 세 시간 정도 달려 넬슨베이에 갔다. 파란 바다가 정말 깨끗하고 장관이었다. 바다는 장쾌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싱싱한 해산물을 무한 제공해준다. 수족관이 아닌 큰 바다에서 자연 상태의 돌고래를 구경하는 일은 먼 나라에 나와 있음을 실감케 했다.

아나베이 마을의 원마일 비치에는 모래 해안에 조개가 쫙 깔려 있어도 아무도 줍지를 않았다. 살짝 몇 개 집어와 저녁에 된장찌개를 끓여봤는데 질기고 맛이 없었다. 엄격하게 동식물 보호법을 시행하고 어긴 사람에게는 무거운 벌금을 매겨서 아무도 안 줍는가보다 했더니 이렇게 맛이 없으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휴가철이고 금요일이라 넬슨베이 근처의 모든 모텔은 집집마다 NO VACANCY 팻말이 내걸렸다. 결국 방을 구하지 못해 시드니로 돌아가는 길에 근처 와이너리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사고 한잔씩 시음을 했다. 파란 잔디 위 유칼리나무 그늘 아래 소박한 벤치에서 보내는 한가한 시간, 늘 이런 시간을 꿈꾸었다. 나무에 코알라 몇 마리가 매달려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다음날은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이어지는 프린세스 하이웨이를 달려 시드니 남쪽의 울런공, 카이아마, 그리고 저비스베이에 갔다.

시드니에서 가깝고 블로우홀로 유명한 카이아마는 관광지라기 보다 깨끗한 마을이었다. 새가 사람 가까이에서 자유롭게 놀고 잔디는 파랗고 바로 옆에는 깨끗한 바다가 있었다. 블로우홀에서 파도가 칠때마다 솟아오르는 물보라를 구경하고 시내 거리를 걷다가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물고 또 가다 피쉬 앤 칩스를 사서 걸으며 먹고 예쁜 물건 파는 곳 있으면 윈도우쇼핑도 했다.  바다 가까운 파란 잔디밭에 삼나무 비슷한 숲이 있고 그 아래 목제테이블이 있어서 그림처럼 도시락을 펼쳐 점심을 먹은 후 저비스 베이로 이동했다.   

 나중에 더 다녀보니 호주 곳곳이 내셔널파크(국립공원)였지만 입장료를 내는 곳은 저비스베이 국립공원이 유일했다.

1인당 2000원쯤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저비스베이는 전체가 국립공원이었고 하나의 별천지였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간이 샤워장과 취사시설이 갖추어진 캠핑장, 설탕알갱이처럼 보드랍고 하얀 모래 해안에 캥거루가 가끔 나타나 사진포즈를 취해주기도 하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바닷가 숲 속, 자연을 잘 보존하면 인간이 어떤 이익을 얻는지 보여 준다. 빨갛고 파란 선명한 빛깔의 새나 캥거루가 손에 올라앉기도 하고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는 것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는 듯 하였다. 

수영복을 준비해오지 않아 허벅지 깊이 정도의 바다에 바지를 걷고 들어갔는데 물결이 간지럽히는 정도의 바다답지 않은 고요하고 깨끗한 비치였다. 아들은 수영하자고 졸랐지만 뒤처리가 난감해 아들만 팬티바람으로 수영하게 하고 우리는 밖에 앉아 구경했다. 파도가 너무 잔잔한데다가 수싱이 아주 완만하고 수온도 적당하여 가족 물놀이 장소로는 최적이었다.

공원 구역내의 도로를 무작정 달리다 캥거루 가족을 만나고 오래 전 해안을 감시하던 시설물이 있던 곳에 가보니 빠삐용의 절벽과 꼭 같다. 옛날 이곳을 지키던 사람은 눈 앞의 망망대해를 보며 무엇을 그리워했을까? 

폐허에서 나와 또 무작정 달리니 애버리진 마을이 나왔다. 집은 백인들의 집과 별 차이가 없는데 나무로 만든 커다란 문이나 마을 입구 표지판이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을에서 바다로 내려간 이쁜 길이 있었고 내려가니 아름다운 초생달모양의 비치와 전망대가 있었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와서 물에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2,3일 정도 시내 구경하며 맛있는 것을 사먹고 아주버님 일터에도 가보고 그렇게 지내다 아주버님 일 없는 날을 잡아 우리나라의 자동차 광고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던 그레이트오션로드에 가려고 아침 일찍 나섰다.

시드니에서 멜버른 가는 자동차 길은 두 갈래인데 해안을 따라 달리는 프린세스 하이웨이와 내륙을 거의 직선으로 연결한 흄 하이웨이이다. 거리가 가까운 흄 하이웨이로 시드니-멜버른간이 약 800km. 골번, 야스, 우동가, 앨버리를 거쳐 웡개러타(스펠링을 그대로 읽으면 "왕 갈았다."가 되는) 는 재미있는 지명을 가진 곳에 이르기까지 창밖 풍경은 거의 야트막하고 완만한 언덕이었고 군데군데 느릿느릿 풀을 뜯는 소떼나 풀짐 쟁여 놓은 것 같은 양떼들이 보일 뿐 나무도 별로 없고 이렇다 할 풍경도 없었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완전히 다른 문명을 건설한 미국과 달리 호주는 원주민(애버리진)이 쓰던 지명을 거의 그대로 쓰는 곳이 많다.  웡개러타나 우동가, 시드니의 유명한 본다이, 타룽가, 울런공 같은 지명이 원주민 말이다.  웡개러타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한국에 계시는 시누님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다음날 새벽 일찍 시드니로 돌아와 시누님 내외분은 한국으로 들어가고 우리만 남았다. 꼬박 하루를 달린 길을 되짚어 또 꼬박 하루를 달려 돌아온 것이다. 

 빈 집에 우리만 남게 되어 며칠 가까운 곳을 산책하거나 가까운 홈부시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스타디움을 다녀 오고, 운전 연습 겸 시가지도를 펴든 채 시드니의 코리아타운 격인 스트라쓰필드르 쏘다니다가  집 바로 옆 메모리얼스 클럽의 뷔페에 가서 느긋한 식사를 즐기기도 하고, 리드컴의 베트남 쌀국수집도 가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리드컴의 쌀국수집 주인은 보트피플로 베트남을 떠나와 여기서 국수집을 차렸다는데 나는 동남아 여행에서 맛본 동남아 본토 쌀국수보다 이집의 쌀국수가 늘 그립다. 면은 거의 쌀 생면을 쓰는데 넓적한 형태의 국수만 쓰고 쇠고기 값이 싸서인지 육수가 진하다. 양지머리 육수를 베이스로 RICE NOODLE SOUP BEAF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었고 RICE NOODLE SOUP SEAFOOD는 코리앤더를 듬뿍 얹은 후 매콤한 월남고추 양념을 넣어 먹으면 그만이었다. 해물이 싱싱하여 새우나 오징어나 조갯살의 식감이 탱글탱글하여 더없이 좋았다. 호재는  우리의 해물볶음밥 비슷한 RICE AND SEAFOOD와 볶음 쌀국수인 RICE NOODLE AND SEAFOOD를 좋아했다.  가격은 거의 8~10호주달러니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외식 중에서는 거의 제일 싼 것이었다. 

오번역 바로  앞에는 터키 이민자가 하는 피자와 케밥 가게가 있어서 산책을 하다가 들러서 즉석에서 구운 피자나 케밥을 사먹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집근처와 시내 이곳저곳을 그냥 쏘다녔다. 사실 이게 제일 좋았다. 

  백호주의니 인종갈등이니 뉴스에서 보아왔던 백인 만의 호주가 아닌 다인종 국가 호주의 평화로운 모습과 다양성의 체험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