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동유럽 여행기2 (타트라 산맥을 넘어 슬로바키아로)

목인 2010. 8. 20. 17:05

소금광산에서 나와 폴란드 현지가이드 세근씨와 헤어지고 우리는 슬로바키아의 타트라를 향해 출발했다. 헝가리로 이어지는 이 길은 폴란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타트라와 자코파네를 지나는 길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지만 곳곳에 공사와 휴가 차량으로 트래픽이 심하여 가다서다를 반복하였다. 말은 영어마저도 안통하고 교통 표지판도 읽을 수 없는 글자들로 가득해서 그림엽서 같은 창밖풍경을 보다가 모자란 잠도 청하고 어제 보던 영화 '피아니스트'를 거의 다 보았을 즈음에 완만한 고갯마루에 올랐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불편한 문제가 화장실이었는데 대부분 50센트(우리돈 약 800원)를 내거나 팀별로 10유로를 내야 이용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수준이 높은 오스트리아에서는 거의100% 유료였던 반면 잘 사는 나라가 아닌 헝가리나 폴란드의 휴게소는 대부분 무료였다.

발 아래 굽어보는 풍경은 완만한 구릉이 시야의 끝인 타트라산에 이르기 까지 한장의 풍경 사진처럼 펼쳐져 있고 그너머 타트라 산맥의 준령이 이상향과 인간의 세계를 가르는 장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평원의 가운데 솟은 삿은 늘 알수없는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널따란 풍경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조그만 오두막(나무집 형태의 파라솔이라 해야 더 적당할 것 같은 )아래서 열두어살로 보이는 남매가 빵을 팔고 있었다.  우리 투어버스의 기사인 체코인 토마스 아저씨가 먹어보고 엄지를 들어보여서 15센트짜리와 50센트짜리를 5유로치나 샀는데 알고보니 빵이 아니라 치즈였고 너무너무 짰다. 이후로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어야 했다. 

 

 

휴게소도 없고 점심시간도 늦어 치즈를 먹었는데 얼마나 짠지 생수를 들이키고 하는 사이 어느덧 정체도 풀려 차창으로 타트라의 준령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성채라는 , 루마니아의 카르파티아 산맥과 함께 이슬람이나 몽고의 침략으로 부터 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지켜낸 자연의 성벽답게 웅장하고 거대하고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 중 거의 유일한 산악구간으로 구불렁거리는 고갯길을 넘어 울창한 숲속으로 난 길을 내려가 그림엽서 한장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슬로바키아의 첫마을 즈디아르에서 점심을 먹었다. 구운 민물생선 요리에 곁들인 감자와 후식으로 나온 애플 파이가 맛있었다.

 

 점심을 먹은 즈디아르 마을의 식당

 

슬로바키아는 남한의 절반 정도 크기에 인구는 약 540만의 작은 나라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 독립하게 되었는데 10세기 초 헝가리의 침략을 받아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헝가리와 사이가  좋지 않단다. 분리독립 투표 당시 좀더 잘 사는 서쪽 체코 쪽은 분리 찬성표가 압도적이었던 반면 농업 위주의 가난한 동쪽 슬로바키아 쪽에선 반대표가  많았지만  전체의견 70몇퍼센트의 찬성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

코루나라는  화폐를 쓰면서 유로화를 받지 않는 곳이 많아 다소 불편하나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타트라나 헝가리로 넘어가는 국경 일대 휴게소에서는 유로가 통용되고 있었다.

등산열차를 타고 타트라산 중턱에 올라 트레킹을 하였다. 멋쟁이 로컬가이드 유라는 한국인 관광객을 많이 상대해서인지 설악산, 자작나무, 곰취를 알고 있었고, 왕복트레킹 세시간 동안 나는 소백산과 영주, 부석사, 그리고 유교문화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불교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유교나 공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어 짧은 내 영어 실력으로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유라가 잠시 멈추더니 키 작은 관못 수풀에서 작은 열매를 따서 주었다. 야생 블루베리였다. 맛은 별로 없지만 다들 블루베리를 따느라 한동안 수풀을 헤집고 다녔다

타트라산 중턱의 야생 블루베리

 

타트라는 유럽의 평원지대에 길게 늘어선 산군으로 특히 평원지대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빼어났다. 울창한 가문비나무 숲 군데군데 나무가 죽어있어서 까닭을 물었더니 2004년에 엄청난 바람(타트라의 폭풍이라고 명명)이 그리 만들었다 한다. 2004년에 우리나라에도 루사 태풍으로 많은 숲과 마을이 망가졌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트레킹 중간 숲이 끊어지고 시야가 트이는 곳에서 내려다본 평원과 평원 한가운데 마을이 꿈속 풍경처럼 아늑했다. 분홍의 꽃으로 뒤덮인 산이 멀리서 보니 꼭 진달래와 철쭉이 만개한 우리나라의 산과 비슷하여 꽃이름을 물어보니 위로우플라워라 한다. 알프스 토끼풀이나 물봉선처럼 생긴 보라색 야생화도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타트라 산맥 최고봉은 겔라초브스키 산으로 해발 2,663m, 알프스 산맥에서 동쪽으로 뻗어나와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으로 양국에서 모두 국립공원으로 정해 놓고 있다. 스위스의 샬레처럼 3층집이 많고 지붕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의 전형적인 형태로 뾰족하고 가팔랐다. 목재가 풍부한 지역답게 장작을 패서 쌓아 놓은 곳이 많이 보이고 페치카의 굴뚝이 지붕 위로 솟아 있었다. 나무로 지붕을 잇대어 지은 집도 많이 보였다. 

넓은 초지를 뛰어가는 노루 한마리를 보았다. 고라니 혹은 사슴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는 늑대, 오소리, 시라소니 등이 살고 있단다.

다시 등산 열차를 타고 산을 내려와 인근의 호텔 허버트에 짐을 풀었다. 자그마하고 낮은 건물의 모든 방에 테라스가 있었고 테라스 난간에는 화분이 걸려 있었다. 앞으로는 완만하게 내려다보이는 평원의 평화로운 저녁 풍경이 있었고 뒤로는 웅장한 타트라의 준령이 남은 저녁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이번 여정 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드는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