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힘들었던 일주일이었다.
개학을 하고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교실을 비우게 되어 7일인 특별휴가를 5일만 쓰고 화요일부터 출근을 했다.
출근하니 나를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아이들이었고 그 다음은 날짜가 임박한 보고 공문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네지만 감사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가 휘리릭 흘러가 버렸다.
거기다 수요일에 아버님이 덜컥 입원을 하게되어 밤늦게까지 병원에 있었다.
큰 병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래서인지 주말이 가까와올수록 체중이 늘어갔다.
몸도 천근, 거기다가 마음도 천근에 점점 근접하고....
지난주 토요일이 일토였으니 당근 이번주는 놀토여야 하는데 웬걸 지난 주가 5주고 이번에 첫주라 휴일이 아니었다.
격주 근무의 익숙한 리듬이 삐걱거리면 또 온몸이 비명을 질러댄다.
토욜 정오 무렵 갑자기 옆반 친구에게 바람 맞으러 가자고 했다. 각자 아이들 점심 해결해주고 만나서 출발한 시각이 오후 세시, 조금 늦긴 했지만 다행히 춘양까지 4차선이 개통이 되어 금방 낙동강변 임기에 닿았다.
가는 길 내내 해바리기, 과꽃, 백일홍 같은 늦여름과 대추, 코스모스, 사과 그리고 밝은 황금색 빛이 도는 오후 햇살 까지 가을이 공존하고 있었다.
임기초등학교 앞의 낙동강 앞에 차를 세우고 맑은 공기과 푸른 물빛, 새파란 하늘빛 함께 넣어 저어가며 커피 한잔을 마셨다. 몇해 전 우리 오지마을 사람들과 함께 왔던 두음리로 들어가는 길목 양옆은 한쪽은 강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은 노랗게 벼가 익어가는 논과 하얀 메밀꽃이 가득 채워진 밭이 함께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두음 분교는 당연히 폐교가 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이들 노는 소리가 활기찼다.
유기농업을 하는 안식일교회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이 더 늘어 교사도 두명이 근무를 한단다.
깨끗하게 청소된 화장실과 세면장에 나란히 걸린 아이들 양치컵, 아이들 이름표가 다 붙은 입구의 신발장, 무엇보다 운동장 한켠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과 작은 운동장에서 행복한 웃음 맘껏 날리면서 뛰어노는 열명 남짓의 아이들과 강아지 며 몇마리, 고양이 한마리(양갱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친구가 된 고양이는 대전어디선가 누가 좀 키워주세요 하는 쪽지와 함께 버려진 것을 이곳 아주머니의 딸이데려왔다고 한다)
가을 오후의 햇살만큼이나 투명하고 행복한 풍경에 우리 아이들도 저렇게 자라야하는데 하면서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마을 아주머니 한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느긋하게 지는 해를 보기엔 너무나 짧은 일정이라 아쉬운 인사를 하고 돌아나와 낙동강변까지 와서 낙동강을거슬러 올라가는 길을 따라 현동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적당한 크기의 강폭과 맑은 물, 변화 무쌍한 강변을 따라 작은 마을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빤가 사과가 익어가는 과수원과 노랗게 벼가 익어가는 논, 그리고 정말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은 메밀밭이 이어지고 친구와 나는 생각나는 대로 번갈아가며 메밀꽃 필무렵의 구절을 읊어 대었다.
강 위에 걸쳐진 작고 허술해보이는 그래서 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다리 건너엔 그림처럼 평화로운 마을이 있고 그 사이사이에도 어김없이 메밀꽃과 사과밭이 있었다.
대단원 바로 직전에 언제나 절정이 있는것처럼 길이 강을 벗어나 현동에 닿기 직전, 가장 풍경이 좋은 곳에 가장 넓은 메밀밭이 있었다. 다음번 정기 여행에 창해님의 로맨스가 펼쳐질 곳이 이곳 아닐까... 혼자서 흐뭇한 웃음을 흘리며 지나쳐 가파른 고개를 넘으니 현동이었다.
같이 간 친구는 외가가 봉화이고 시댁이 울진이라 수없이 지나다닌 길에서 한발짝만 벗어나면 이런 데가 있다는것도 모르고 수십년을 다녔단다.
한시간만 벗어나도 이런 여유
가 있는 것도 모르고 시계추처럼 살아가는 나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돌아노는 차 안에서 리 오스카의 노래를 들었다. 돌아보니 지구 반대편의 멀고 먼 샌프란시시코베이가 더 가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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