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흑석사 목조 아미타불상과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을 보기 위하여 흑석사를 찾았다. 이산면 가는 길가 ‘흑석사’라는 안내 푯말을 따라 들어가니 오른쪽 산위로 작은 전각이 하나 있고 그 안에 좌상과 마애불이 봉안되어 있었다.
국보인 흑석사 목조 아미타불을 찾아보았다. 아미타부처는 미래세계인 서방정토를 다스리는 부처님으로 대웅전 안에 본존으로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유리로 간막이가 되어 있어서 목조불상의 특징을 느끼기엔 좀 무리가 있어보였다. 나무로 조각한 후 금박을 입혀 놓아서 그냥보기엔 금동불상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은 지방문화재인 흑석사 마애삼존불 바로 앞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앞과 옆이 모두 트인 건물에 있어서 앞에서도 옆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
석조여래좌상 뒤편의 마애삼존불은 내 키 만한 바위 면에 세분의 부처님을 새겨 넣은 모습인데 원래는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이곳에 모셔 석조여래좌상을 호위하는 듯한 형태로 배치된것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전각 또한 폐쇄되어 있지 않고 산비탈 위에 정면과 죄우가 개방된 특이한 모습이었다.
<성혈사>
초암사에 갈 때 배점리에서 성혈사라는 절 안내판을 볼 때 요즘 어디서나 볼수있는 그저 그런 절 하나인 줄만 알았는데 성혈사 나한전에 대한 어느 여행객의 글을 읽고 성혈사 나한전을 찾아 나섰다. 신라시대에 지어진 오래되고 유서 깊은 절로 소백산 중턱 깊은 곳에 위치한 절이었다.
성혈사의 ‘나한전’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인데 건물이 작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는 고고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 이 나한전의 문살은 모두 삼칸으로 되어 있는데 양쪽 문살은 여느 절처럼 연꽃 문양 무궁화 문양 등 익히 보아 온 것인데 가운데 문살은 참 아름답고도 특별하였다. 이곳의 문에는 연못 속을 표현한 것으로 게, 물고기, 새 같은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세월의 무게가 앉은 나무의 결 위로 궂이 채색을 더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소박하고도 재미있는 문살. 그리고 그 소박함을 기품으로 살려낸 단아한 작은 전각인 나한전.
< 부석사 >
오늘은 5시 30분에 부석에 있는 부석사에 갔다. .
처음에 부석사 옆에 내려서 산 아래의 경치를 보았다. 산이 끝도 없이 있었고 밑에는 마을과 건물이 있었다. 저 멀리 뻗어나간 산줄기가 백두대간이고 부석사에서 보는 백두대간의 모습이 국보 1호가 되었어야 한다던 유홍준씨의 말에 수긍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계단을 올라가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국보인 무량수전 앞 석등을 보았다. 제일 아래쪽에 직사각형(장방형)의 기단석이 있고 그 위에 연꽃 모양의 옥개석, 그리고 그 위에 키가 1m 정도 되는 8각형 모양의 굵은 기둥이 있었다. 그 위로는 6각형의 석등이 하나 있었다. 석등 가운데에는 중간에 구멍이 각각 한 개씩 있었다.
무량수전 안에는 국보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이 있었다. 이 부처님은 다른 절과는 달리 정면에서 보면 옆모습을 보이고 있다. 은은하고 따뜻한 느낌의 촛불아래 부드럽고 원만한 부처님의 상이 열린 문으로 참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 불상은 찰흙으로 모양을 만든 후 석고로 상을 떠서 그 안에 다시 금동을 부어 만든 불상인데 보통 단단한 나무나 돌을 깎아서 만드는 것을 조각이라고 하고 이 불상처럼 진흙으로 빚어서 모양을 만든 것을 소조라 한다.
무량수전을 나와 오른쪽 산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보물인 삼층 석탑이 있었다. 아랫마당쪽의 도지정 유형문화재인 한쌍의 삼층석탑에 비해 훨씬 크고 모양도 더 안정감과 양감이 있다. 입구의 두 석탑보다 부피감도 있고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비율이 훨씬 더 안정감이 있어보였다. 단단하고 강한 쇠는 몇백년 지나면 녹이 슬어 모양을 알아보기가 어려운데 돌이나 흙으로 만든 것은 훨씬 오래 원래의 모습대로 보존이 된다.
석탑 오른쪽으로는 이어지는 산길로 올라가 조사당과 선비화를 보았는데 안타깝게도 문이 닫혀있어 국보인 조사당 벽화는 볼수가 없었다. 자인당 안에 있는 3개의 작은 석불 중 가운데 것은 근처의 다른 절에서 옮겨 온 것이라 불상 뒤에 아무것도 없는데 양쪽의 불상은 부처님 뒤에 둥근 모양의 광배가 있었다. 이 양쪽에 있는 두 개의 불상이 바로 보물인 북지리(부석사가 있는 마을 이름)석불이다. 조사당 앞에 작은 나무 선비화 가 있었다. 의상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 선비화는 의상대사가 짚던 지팡이를 꽂아서 다시 살아난 나무라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사당 현판과 조사당 건물 자체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무척 많은 땀을 흘리고 다시 무량수전 앞으로 내려오니 어디선가 북치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 두 분이 북을 치셨는데 북소리가 듣기 좋았다, 북을 다 치고는 목어를 치고 그다음엔 쇠로 판을 쳤다. 좀 있다가 바로 옆 종각에서 다른 스님이 종을 치시는데 날마다 저녁 6시 반쯤에 친다고 한다. 종소리는 한번을 치면 삼십초 정도 울림이 있었는데 에밀레 종 소리만큼 울림이 좋았다.
종소리를 들으면서 정문 쪽으로 내려와 부석사 당간지주를 보았다. 당간지주는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거는데 이것을 당이라 하고 이 당을 걸기 위해 돌기둥을 두 개 세워놓은 것인데 절의 세력이 강하고 유명한 절일수록 당간의 크기가 컸다고 한다, 부석사의 당간의 높이가 약 4.6미터로 거의 내 키의 3배가 되니 당시 부석사의 위세를 짐작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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