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등산 트레킹 후기

[스크랩] 대간구간 최고의 난이도...성격 까칠한 대야산 구간을 드디어 돌파

목인 2006. 3. 28. 01:04
2월 함백산 구간의 부드러운 종주길의 여운이 오래 전 기억처럼 느껴진다.
함백산을 다녀온 지 꼭 한달만에 나선 대간길, 그래서일까 출발부터 힘들었다.
조항산 구간때 올랐던 길로 고모치에 오르는데 준비 운동 안된 다리가 초장부터 비명을 질러 댄다.
이 부근은 훈장님 말씀에 의하면 건축 쪽에서 알아준다는 문경석, 괴산석으로 유명한 석재 산지로 대간길 양쪽 곳곳에 상채기 투성이라 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모치에서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는데 훈장님이 촛대 바위를 보라 하신다. 조금 더 지나온 내 방향에선 꼭 성모상 같은 가녀린 선바위가 하나 있었다. 사방에 기암이다.

가파른 능선을 올라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두고 대간길을 벗어나 둔덕산 능선으로 가니 사방 전망이 탁트인 전망 좋은 바위가 있다.
대야산의 명물인 마귀할멈통시바위,
언젯적 마귀할멈인지 모르지만 이런 전망 좋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산다면 아무리 고약한 마귀할멈이래도 3년이 못가서 천사로 바뀌지 않을까,,

남쪽으로는 11월 대간 때 청석바우님의 동동주 한통을 폭포수로 받아 마신,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조항산이 반가이 맞아준다. 청석바우님은 아직까지도 그 동동주가 못내 가슴 아프신 모양이다. 동쪽 능선 끝에 둔덕산은 마음 푸근한 어머니 같은 반면 북쪽의 대야산은 칼날 같은 기상의 서슬 퍼런 미남 청년같다.

바람 끝은 아직 차서 걸음을 멈추고 쉴 때면 오슬오슬 추워지지만 양지바른 곳에 햇살은 무르익은 봄이고 따뜻한 남사면 오르막길 중간에는 벌써 노랑제비꽃 몇송이 피었는데, 북사면의 등산로에는 낙엽 아래 채 녹지 않은 얼음이 복병처럼 숨어 있어 흔한 표현처럼 3월의 산은 봄과 겨울이 공존한다.

통시바위에서 밀재로 이어지는 능선의 내리막길에서 등산화 바닥의 돌기에 돌부리가 걸려 넘어졌는데 넘어지는 순간 이거 많이 다치겠는 걸 했는데 다행히 파스 석장 넓이의 시퍼런 멍과 약간의 통증 정도. 조앤님도 미끄러져 스틱이 부러지고 훈장님도 발목이 삐끗하시고, 그래도 크게 다친 사람 없으니 조항산 산신령님께 거하게 드린 동동주 고시레 덕을 보았나보다.

몇번이나 여기가 밀재인가 했는데 참 안나타나주더니 드디어 밀재.
작년 여름의 번개 때 더 많은 오지님들과 찾았던 기억들을 이야기하며 대문바위 코끼리 바위들을 지나고 대야산 정상이 저만치 보이는 바위 위에 앉아 점심 보자기를 펼치는데 와아!! 그 풍성함이란...
맛깔스런 반찬, 재밌는 이야기, 따뜻한 커피,,, 기타 등등

대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곳곳에 밧줄에 매달리고 능선은 양쪽 걸음 옮길 여유도 없이 빡빡하여 인심 사나운 부잣집 곳간같다. 그래서 별루 맘에 안든다 머.
그래도 전망 하나는 기가 막힌다. 작년 번개때는 날씨가 안좋아 아무것도 안보였는데 가까이 중대봉과 그 아래로 괴산 장연 땅의 오밀조밀한 마을과 저멀리 군자산, 칠보산... 남쪽으로는 불꽃이 피어 오르는 것 같은 속리산의 연봉들, 문장대의 철탑이 이쑤시개만하다. 그리고 또 희양산, 장성봉,악휘봉, 마분봉, 또 무슨 무슨 산, 산 산,,,, 참 첩첩이 겹쳐 있는 저 많은 산들 언제 다 가볼까?
오래 살아야지. 이땅의 이름 없는 봉우리 하나까지 남김없이 다 오를 때 까지 오래오래 살아야지.

끝없는 산줄기를 넋 놓고 바라보는데 누군가 "발"을 외친다. 돌아보니 청석바우님.
미운 청석바우님. 앞장서서 휭하니 달아나셔서 겨우 겨우 따라 붙어 숨좀 돌릴라치면 " 발" 하시고, 10키로야 가배얍네 뭐 하시질 않나. 지난번 함백산 구간 앞서서 휭하니 가시더니 등산 안내판 앞에서 조앤님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살짝 엿듣고 뒤로 넘어질뻔 했다. 뭔 다정한 이야기 하시나 싶어 다가 갔더니 두분 하시는 말씀 .
"4.7킬로니까 마악~~~해서 한시간에 ~~하자구요"

작년 대야산 번개때 폭포 쪽 내림길에서 급경사 바위길에서 쩔쩔 매고 있을때 훈장님이 사진 찍으시면서 "엉금엉금 기는 목인"이라 제목붙여 사진 올리실거라고 했는데 정말로 무서웠었다. 그런데 그길은 대간 쪽 하산길에 비하면 산책길이었다.

내리막 시작쯤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보고 방장님이 "급경사라는 곳이죠?"하신다. 가파른 내리막을 어찌어찌 겨우 내려서 전망 바위에서 한번 내려다 보는데 어라 길이 없다. 방금 우리가 내려온 칼날 같은 능선을 빼곤 사방 까마득한 절벽인데 .... 설마 이리로 하고 내려다본 절벽에 밧줄이 걸려 있다. 스틱을 아래로 던져 놓고 줄타고 가자는 훈장님 말씀에 조앤님 여기서 스틱 던지면 못찾죠 하신다. 내려다 보니 끝이 안보이는 수직 절벽이라... 일행 모두 긴장하고 다들 스틱을 접어 배낭에 매달고 장갑 끼고 암벽 하강 준비다.
내려다 보니 어지럽고 무섭고... 방장님이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 하는데 빨리 내려 가버리고 싶어 먼저 밧줄에 몸을 맡기고 한발 한발 내려 서면서 긴장을 풀겸 혼자 중얼거리고 투덜거림.
산이 참 독하다,
근데 이런데다 줄 매달아 오르고 내리는 인간은 더 독하다.

팔은 아프고 아직도 발아래 땅은 보이지도 않고
위에서 내려오시는 분들 소리는 나는데 고개를 젖혀 올려다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수십미터 암벽을, 군데 군데 발디딜 곳에 얼음까지 얼어있고 다리는 달달 떨리는데 팔은 아프고...

이 구간 구간거리와 고도표를 보면 늘 궁금했었다.
도상 거리 500미터에 고도가 300미터나 낮아지는 곳,
고도표에 80도에 가까운 기울기로 그려진 그 송곳 같은 부분의 실체.
그것을 드디어 확인한 것이다.

이제는 편안한 길이겠지 했는데 웬걸 550미터의 촛대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솟구친 689봉(촛대봉)까지 다시 올랐다. 다 와 가겠거니 짐작했는데 버리미기재까지는 아직도 1시간20분이란다. 다시 500미터의 불란치재까지 열나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할 곰넘이봉을 보니 저만치 하늘에 걸려있는 봉우리인데
"살짝 200미터만 높이자"
"까짓거 200미터쯤이야..."
다들 이러시는데 그래 나도 그렇게 맘먹자
하지만 아까 넘어져 부딪힌 엉덩짝이 심상찮게 아프다.

힘들때면 걸음을 세는 것이 대간 다니면서 생긴 습관이 되어 버렸다.
하나, 둘 셋 세다보면 의외로 금방이다.
곰넘이봉 오르는 길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것 같기도 한고 몇개의 불상이 나란히 선 것 같기도 하고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늘을 똥침하는 것 같은 참으로 요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사징 찍으시던 훈장님이 날더러 올라가보라고 하는데 올라는 갈것 같은데 내려올때가 문제일것 같아 사양하고 먼저 올라가는데 들러리랑 훈장님 안오신다.
바위만 보면 꼭 올라가봐야 하는 개구진 분들, 기어코 올라갔다 오는 모양이다.
촛대봉이고 곰넘이봉이고 앙칼진 대야산 그늘에 가리긴 했지만 오르고 내리는 길이 다 바윗길, 밧줄타기의 연속이다.
뾰죽뾰죽한 대야산을 조심스럽게 넘어온 곰이 이제는 다 왔거니 하고 방심했다가 넘어진 곳이라나 어쩐다나 암튼 곰넘이봉도 만만찮다.
정상에는 바위 하나가 둘로 갈라져 마주보고 걸터 앉아 놀기 딱 좋은 바위가 있어 마지막 커피 한잔.

하산길에는 더 힘이나서 일등만 하던 목인, 오늘은 불편한 다리때문에 조심조심 내려오다보니 꽁등.

고모치 아래 차를 가질러 훈장님과 들러리가 출발하고
방장님 조앤님 바우님 그리고 나 넷이서 논두렁에서 냉이 캐고 쑥도 캐고
서쪽 하늘에 반뼘쯤 남은 해가 꼴깍 넘어갈 때까지 캔 통통하고 연한 쑥이 딱 한줌이다.

속리산 구간때부터 이번에 세번째인 화북의 버섯전골 외 냉이무침, 보리싹인지 원추리인지 봄냄새나는 쫄깃한 나물과 맛난 반찬들로 행복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도회지의 버섯전골에는 팽이 양송이 느타리 표고 이런 걸로 하지만 여기 버섯전골에는 싸리버섯, 능이버섯, 꽃송이버섯 이런 것들이 들어 있다.

즐거운 산행, 맛있는 음식, 중간중간 정말 맛깔스런 이야기들,
우리는 이맛에 중독되었다.
출처 : 오지의 마을과 산과 계곡
글쓴이 : 목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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