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등산 트레킹 후기

[스크랩] 조용한 산에서 조용한 희열, 때로는 거친 암벽같은 즐거움의 성치산

목인 2005. 8. 9. 17:08

.. 어떤 사람은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큰산이 큰 골짜기를 품는다고도 했다.
성치산을 다녀오면 산이 높지 않아도 골이 깊을 수도 있고 나즈막한 산도 이렇게 큰 골짜기를 품을 수 있을까 하고 슬며시 그 말을 거두어들이지 않을까?
해발 600미터 남짓의 그것도 해발 이백미터 이상인 진안 고원 언저리에 솟은 산이라 그저 동네 근처의 야산 같아만 보이는 산 속에 이런 기막힌 계곡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한 곳에 십이폭포골이 숨어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 입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방장님의 길찾기는 실력+경험+자료 거기에다가 영감까지 갖추셔서 평범하고 그저 그런 시골 마을에 불과한 원구석 마을 입구를 단박에 찾아내셨다. 어찌나 동작이 빠르신지 등산화 갈아신고 어쩌고 하는 새에 벌써 저 앞에서 출발하시려고 기다리시는 것 아닌가? 방장님 뿐 아니라 다른 분들 다 동작빠르기는 참... 허겁지겁 따라 나서는 통에 간식거리랑 물통이랑 커피랑 차에 그대로 두고 내렸다. 아차했지만 산에 가보신 분들 아마 이 심정 알 거야. 앞으로 가는 길은 몇십킬로를 가도 온길 되돌아가는 길은 100미터도 안가고 싶은 걸... 대신 젤 큰 배낭 메신 조앤님을 찍어 조앤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야무진 빈대가 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미리 말하지만 다른 분들도 저 같은 경우 당하시면 조앤님 찍으시면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갈수기라 물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바닥의 돌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계곡 따라 걷다보니 통통한 꽃대에다가 털로 살짝 가린 꽃송이를 고개 숙인 채 풀잎 사이에 비집고 나온 할미꽃이랑 분홍꽃송이 막 터뜨리려는 복사꽃, 화사한 연분홍으로 내가슴에 봄바람 집어넣는 산벚꽃, 그리고 이름 없는 산나물 풀꽃들, 꽃보다 더 예쁜 연초록 새잎 피워 올리는 오리나무 굴참나무등등등....
첨 뵙는 분들도 많고 아직은 오지 초보 신세라 얌전한 척 하면서 걷고 있는데 저 앞에서 새색시 방귀소리처럼 요염한 버들피리 소리가 들린다. 낭산님이 하늘님 아드님(예수님?)을 위해 어릴 적 추억 걷어올려서 만드신 버들피리였다. 버들피리에 관한 추억이라면 나도 한가닥 하는데 불어보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내숭을 떨어보기로 하고 참았다.
이대로 하루종일 걸어도 행복할 것 같은 계곡 길을 버리고 갑자기 방장님이 산자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는데 소등처럼 좁긴 해도 부드러운 능선인데다가 키 큰 나무 아래로 진달래 생강나무 꽃까지 화사하여 즐거움이요 거기다 낭산님의 자연사 강의에 문학기행 강의까지 들으면서 땀 흐르는 줄도 몰랐더라.
누가 알았으리오 꿈결같은 그 길이 기다리고 있는 고난을....
정상이 저기 위에 보이는데 눈앞을 가로막은 것은 시원한 능선 길도 아기자기한 계곡 길도 아닌 암벽이었으니 그것도 수학적으로야 잘 모르겠지만 보기엔 백미터는 족히 되겠고 거의 90도 가까워 보이는 직벽에 가까운 절벽....
척후병 록키님과 어울림님의 보고를 받고 전대원 출발하여 끌어주고 밀어주고 열 살짜리 현철이까지 한명도 낙오없이 로프도 자일도 없이 맨몸으로 전원 암벽등반에 성공했는데 기네스북에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성치산 정상에서 성봉으로 가는 길은 재미있는 능선길이었다. 때로는 칼날 같은 암릉과 시원한 전망대 바위 그리고 솔숲이거나 상수리나무 숲에 난 낙엽 덮힌 산책길, 오르락 내리락 또 오르락 내리락.... 그 중 제일 전망 좋고 너른 봉우리에서 점심보따리를 풀어헤쳤다. 고만고만 준비하신 음식들을 꺼내놓았는데 울림님 음식 솜씨는 허깨비님의 북한산행기에서 잠시 엿본 바 있는데 그 글 읽을 땐 에이 어쩌다 한번이겠지 했는데 상습범인가보다로 정정했다. 그리고 조앤님의 요술배낭은 학교 다닐 때 견또(우리말로 뭐라해야 하나? 찍기?)실력 형편없었던 내게 완벽한 성공찍기였다. 끝없이 나오는 오렌지 참외 얼음물 커피 주먹밥 발렌타인...땅콩 비슷한 그 뭐죠? 기억도 다 못하겠네 암튼 조앤님 배낭은 전래동화에 끝없이 소금을 내놓다가 바다에 빠지는 신기한 맷돌에 버금가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살랑바람 불고 그 바람에 진달래 코앞에서 흔들리고 가끔씩 한 수 읊으시는 샤모니님의 시(죄송함다 그때는 저거 후기에다 꼭 써야지 했는데 까먹었어요.) 그리고 맛있는 점심, 어떤 분은 빈손으로 오셔서 풀 코스로 드셨다고 이 재미로 오지 오신다고 하셨는데 개인신상정보라 밝히면 법에 걸릴 것 같아 꾹 참습니다.
누군도 와본 사람이 없어서 방장님이 준비 해오신 간략한 지도에 의존해서 12폭포로 하산하는 길을 찾았는데 낭산님 방장님 연세는 공으로 잡숫는 게 아니란 걸 느꼈습니다. 낙엽이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내려와 만난 계곡(12폭포골)은 널찍한 암반과 보통머리로는 틀림없이 세다가 까먹을 수많은 폭포와 소와 담은 물과 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 중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세다가 안까먹은 분 딱 한 분이었다고 기억하는데 그분이 우리 오지의 맏언니인분이라고 절대 말 못합니다.
약간 아쉬움은 연중 가장 수량이 적을 때라 우렁찬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인데 여름 어느 날 계곡번개로 다시 와서 신나게 물미끄럼 타기로 했다.(그 약속 안 지키면 발언자 신상 공개할 것임)
계곡에서 멀어지는 등산로로 접어들면서 폭포는 다 보았구나 하고 아쉬움을 달래려는데 웬걸 이제껏 질렀던 탄성을 성급하다고 꾸짖듯 정말로 크고 높고 깊고 우렁찬 한마디로 대단한 폭포가 거기 있었다. 성치산의 이과수 폭포 또는 성치산 천지폭포...

다리도 아프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고도 하시고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 미적거리며 골짜기를 나오니 마지막으로 갯가의 복사꽃 한그루가 화사함으로 마무리하라 한다.
금산팔경 중 하나라면서 이정표 하나 없고 안내판 하나 없는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입구의 하천을 건너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야할 원수는 못만나고 좋은 사람만 만나니 외나무다리싸움도 못해보고 송사리떼 헤엄치는 물에 들어가 세수도 하고 발도 담그고 노는 사이에 원구석 마을까지 오릿길 걸어가 차를 가져오신 방장님 어울림님 그리고 하늘님.
늦었다 포기하지 않고 혼자 차 끌고 내려와 합류하신 강남제비님 만나 보곡산골 산벚꽃 보러 갔는데 애고 죄송해라 제가 가자고 추천했는데 때가 일렀나봐요. 산꽂축제한다고 가는 길에 안내판은 요란하게 붙었더만 막상 아직 만개시기가 아니어서 꽃몽오리와 먼지만 보고 왔다. 다른 좋은데 들릴 수도 있었는데 괜히 오자해서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 죄송했다.
해는 서산에 뉘엿뉘엿하고 갈 길은 바쁘고 헤어지기는 싫고.....
하늘님이 추천하시는 추부의 추어탕 먹고 헤어지기 싫어서 커피 핑계대고 추어탕집 마당에 앉아 이야기하고 웃고
그동안 다른 분들의 후기에서처럼 뒤집어지게 재미있고 즐겁고 그런 번개는 아니었다. 오지이기에 남들은 금산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죄다 운일암반일암 아니면 마이산으로 내달릴 때 우리는 한가하고 조용하고 오붓한 성치산 골짜기에서 가슴 가득 차오르는 조용한 희열을 느꼈다면 그것 또한 즐거움 아니겠는가?
조용히 다소곳하게 그러나 언제나 옆에서 함께 걸었던 수호천사님,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로맨틱한 시에다가 음악에다가 로맨티스트신 줄만 알았는데 널린 쓰레기 주워 보물이라며 챙겨오시던 샤모니님,
잠깐 건강강좌 열어 장금이보다도 고운 목소리로 장금이보다 더 귀한 정보 들려주신 그리고 요술배낭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저의 표적이 되실 조앤님,
살림솜씨 궁금하게 만드는 한쪽 울림님과 묵묵히 다른 사람을 배려해주시는, 그래서 산에서도 어울리고 집에서도 어느 장소에서도 어울리는 울림님 안팎,
스스로 많이 다녔다고 자부했는데 참 부끄러웠답니다. 앞으로 선뜻 어디 추천한다고 글쓰기를 몹시 조심스럽게 만드신 낭산님.
처음엔 열살짜리 아들 데리고 올 걸 했는데 나중보니 안데려오기 잘했다 생각했답니다. 같은 열살인데도 제 아이랑 어찌나 다른지 산행 내내 풀꽃이름 나무 이름 같이 공부하시면 다정한 아버지 모습 보여주셔서 언젠가 학부모 모임에 쓰일 사례를 제공해 주신 하늘님과 그의 아드님,
늦게 도착하셔서 이야기한번 못붙여본 강남제비님(누군 참새라고 계속 주장하시던데 제비인지 참새인지 저는 아직 판단을 못하겠어요.)
예측할 수 없는 길을 앞장서서 헤쳐가신 우리의 척후병 록키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지가 이렇게 활기차고 살아있을 수 있게 언제나 감동적인 주인장으로 계신 그래서 더 이상 찬사를 드릴 수 없음이 안타까운 방장님.
아차 한사람 빠졌네 당신이 가고싶었을텐데 마눌 혼자 보내놓고 엉덩이 들썩거려 하루가 몹시 길고 힘들었을 우리 들러리님 고맙고 전 시집 참 잘 갔어요. 담엔 우리 둘이 카풀합시다. 방장님 2인승이면 두사람만 타도 풀 해당되죠?

덧붙임 : 낮은 산이라고 만만히 보고 출발했어요. 마음먹기가 반이라고 그말 실감했네요. 겸손함 마음으로 낮은 자세로 산을 올라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답니다.

출처 : 오지의 마을과 산과 계곡
글쓴이 : 목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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