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등산 트레킹 후기

[스크랩] 소백산 심설 산행

목인 2006. 2. 1. 01:00














설 연휴 마지막날 하늘이 무거워 뭔가를 떨어뜨려 놓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는것 같았지만 워낙 날씨가 따뜻해서 눈이 올거라곤 예상을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이쪽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단다.

날이 이렇게 따뜻한데 웬 대설? 하고 창문을 여니 세상에 정말로 하얀 세상이 거기 있다.

 

느즈막한 아침 후 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고 죽령에 올라 갔다. 

위로 올라 갈수록 눈은 푸짐해지고 소나무 가지는 눈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축축 늘어졌다.

디카 가지고 다시 올라 오자고 집에 들렀는데 들러리가 갑자기 소백산 갈까? 한다.

내일부터 사흘간 출근이라 오늘은 그냥 느긋하게 뒹굴고 싶은 맘에  망설이다가 까짓거 가자 그랬다.

 

커피 물 올리고 깁밥 주문하고 장비 챙기고 서둘러 출발해서 희방사에 도착하니 두시가 조금 넘었다.

열한시까지 대설주의보로 입산통제였는데 막 풀려 몇사람 올라 갔다고 한다.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 오르는데 시작부터 급경사로 속칭 희방깔닥고개까지 1킬로미터쯤 내내 코가 땅에 닿을듯 된비알 돌계단이었지만  눈 쿠션과 그동안 오지에서 단련된 체력 탓인지 그닥 힘들지 않았다.

마침내 된 오르막의 고비인 희방 깔닥고개에 이르니 먼저 간 이들이 앉아서 쉬다 간 듯 나무 벤치에 눈이 치워져 있어서 김밥과 커피로 산상의 늦은 점심.

 

해발 천미터를 넘어가자 나무가지에 푸짐하게 매달린 상고대가 눈이 부신다.

진달래, 느릅나무, 신갈나무, 소나무, 피나무 나무마다 상고대가 각각 다른 모습이다. 소나무에 눈쌓인것은 봤어도 소나무 상고대는 보았는데 아래서 올려다보니 파란 잎이 꼭 튀김 옷 입은 것 같다.

 

연화봉 정상에 도착한 것은 네시 이십분 쯤. 지난 정기때 차를 마신 곳이 저기 내려다 보인다.

그때는 그리 부산하더니 천지가 고요하다.

정상 표지석 앞에 사진 찍느라 줄 설 필요도 없고 산상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욱도 없다.

시야는 반경 오백미터도 채 안되어 장쾌한 소백의 능선이나

끝간데 없이 이어진 사방의 산줄기도 발아래 세상도 볼수가 없지만  

하나가 좋으면 나머진 포기해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이 산인가 보다.

 

정상에서  다시 커피 한잔을 하고 하산 시작. 마른 길이었다면 무척이나 힘들었을 돌계단도 푹신한 눈에 반쯤 몸을 실으니 순식간에 표고가 낮아진다.

점심을 먹은 깔닥고개에서 남은 커피한잔으로 산행 마무리. 

주변은 어둑해지고 안개인지 가랑비인지 바짓가랑이를 적시던 희미한 힘이 산을 감싸고 돈다.

숲속에 어둠이 내리면 바닥에서부터 어둠이 쌓여가지만  눈 쌓인 숲에선 위로부터 어둠이 온다.. 

 

출처 : 오지의 마을과 산과 계곡
글쓴이 : 목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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