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종주 구간에 고리봉이 두개가 있다.
하나는 성삼재를 출발하여 처음 만나는 봉우리로 1248미터, 구례에 있는 고리봉이라 하여 구례고리봉이라고도 부른다. 또 하나는 정령치에서 북서쪽으로 솟구쳐 오른 고리봉으로 1304미터, 남원시에 있다고해서 남원 고리봉 또는 큰 고리봉이라 부른다.
이 고리봉에서 지리산의 주능선 일부인 서북릉이 세걸산 바래봉 덕두봉까지, 대부분의 대간 종주꾼들은 차라리 대간을 버리고 서북릉을 향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만큼 힘차게 뻗어나가고, 대간은 오히려 능선의 형태조차 희미해진 채 고기리 쪽으로 급격하게 몸을 낮춘면서 대간의 명맥을 이어 나간다.
능선길이라 하기엔 그냥 급한 비탈 하산길 같은 길은 빗물로 미끄럽고 스틱을 안가져간 산울림님과 나는 연신 미끄덩 거리면서 내려갔다. 미끄럼길도 잠시 이내 예전의 백무동 하산길 같은 기분 좋게 완만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들러리 한마디 하는데
"이건 비단길이네"
물론 서역에 이르는 메마른 사막의 비단길이 아니라 비단을 깔아 놓은 듯이 부드럽고 기분좋은 길이었다. 고도가 높을때는 활엽수림이었는데 조금 더 내려가니 소나무 숲길에 솔잎이 깔려있어 푹신푹신하여 젖은 등산화의 고통도 잊고 달려 보기도 하고 걸음걸이에 리듬을 주면서 춤추듯이 걸어도 보았다. 비까지 그쳐서 우의도 벗고, 젖은 머리도 바람에 말리면서 발아래 고기리와 운봉의 너른 들에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모습까지 완상하면서 .....
고기리 삼거리에 이르러 만난 민가에서 농사일 하다 잠시 쉬려고 만든 듯. 어설프나마 비가림천막까지 쳐 있는 평상에서 라면과 찬밥으로 차려진 그러나 황제의 밥상보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퉁퉁 불어터진 발도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면서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끝낼 무렵 평산님의 단호한 외침
"출발 5분전입니다"
그러나 채 5분도 되기전에 기다렸다는듯이 비가 쏟아지고 고기리 삼거리에서 대간은 상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기다린다. 암릉길도 아니고 숲길도 아닌 아스팔트 2차선 포장도로... 설마 이 포장도로가 대간길일까 하면서, 바로 옆 계곡 건너편의 안터마을 쪽은 아닐것이고 이쪽이다 짐작되는 길을 따라 가다가 어 길을 잘못 들었나봐... 다시 마을길을 되돌아나와 어떤 분이 친절하게 달아둔 표지기를 발견, 포장도로가 바로 대간임을 확신하고 걷는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아예 들이붓는다.
비 맞는거야 상관이 없는데 등산화가 점점 무거워지고 신발속이 미끄러워 저 앞 빗속에 솟아있는 수정봉 구간의 능선을 오르고 내릴 일이 걱정이었다.
대간종주기와 지도에는 대부분 가재마을이라고 적혀있는데 현지에서는 노치라는 한자이름 뿐.
수정봉 아래 노치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마을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그 아래 나란히 표지석 두개. 하나는 대간과 14정맥, 하나는 대간상에 위치한 노치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대간상의 마을로 노치마을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 구간인 매요리도 대간이 마을 귀퉁이를 뚫고 지나가니까)
어쨌든 오래된 나무의 편안함과 엄숙함 그리고 우아함까지 감상하면서 다시 증명사진 한장 찍고 마을 안길을 돌아들어가니 노치샘이 있었다. 해발 550미터. 그래서일까 해발 800미터가 넘는 수정봉이 야트막한 뒷산 같았다. 이웃마을의 지명도 높은터라는 뜻의 고기리. 수정봉 능선은 남원쪽에서 보면 높디 높은 산줄기인데 이쪽에서 보면 야트막한 야산자락으로 보일 뿐이다.
노치샘 한켠에 선 이정표에는 여원재 6.6킬로미터... 만만찮은 예감이 들었고 돌아보니 지리산 서북릉이 아름답게 뻗어 있어 잠시 사진 한두장 찍다보니 일행은 또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뒤쳐진 상태에서 일행을 따라잡느라, 게다가 점심 먹은 후 첫 오름길이라 그런지 무척 숨이 가쁘고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했다. 신발 속은 미끄럽고 발바닥과 발끝이 아파 오는데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소나무 숲길 능선은 올랐다 내렸다 끝도없이 이어졌다. 잠시만 걸음을 늦추면 앞사람의 꼬리도 안보이고 쫒아가느라 헉헉대면서 따라가면 또 출발하고....
낯선 길은 더 먼 법이라 했던가?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 안에서는 이정표나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무슨 봉우리인지, 갈길이 얼마나 되는지 예상을 할 수가 있었지만, 공원구역을 벗어나니 대간꾼들이 달아 놓은 빨갛고 파란 표지기 외엔 암런 안내판도 없어서 여기가 어딘지 금방 지난 봉우리가 수정봉이 맞는지 이 안부가 입망치 맞는지 여원재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속으로 걸음 수를 세어 보기도 하고 오른쪽에 지나는 나무 그루 수를 세어보기도 하고 아무리 가도가도 소나무 숲길만 이어질 뿐 여원재 위에 솟은 바위는 나타날 줄을 모른다.
오후 네시.. 언뜻 보니 저 앞에 솟은 봉우리 뒤로 멀리 고남산 중계탑이 보여 일행들에게 자신만만하게 저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라고 했는데
언젠가 여울님이 올린 노래 김민기의 "봉우리"가 그 가사대로 재현될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무너진 나무 등걸에는 앉을 틈이 없었지만....
스틱 하나를 오름길에는 내가, 내림길에는 들러리가 번갈아 썼는데 발이 아파오자 내리막길이 시작되어도 모른 척 내가 가지고 가기도 하고 두어번 엉덩방아를 찧자 아예 나 혼자 쓰라 한다 마음속에서는 고맙단 말이 나왔는데 무뚝뚝한 경상도 아지매 목을 넘어온 말은
" 아 괜찮네요 마"
" 평산님 물 한잔 드릴까요?" 하는 펌프킨님의 친절에
"됐어요." 하며 뚝 자르는 (뜻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정도라는데 듣는 사람은 글쎄?)평산님이나 나나 구제불능.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 계속되는데 언뜻 정면에 바위가 보인다. 아 저 바위구나.
남원쪽에서 차를 타고 올라오면 왼쪽 봉우리 중간에 서있는 거대한 바위...
누군가의 종주기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왼쪽에 산판길이 나타나고,
빽빽한 잔솔 숲 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옹색한 산길이 나타나고
그리고 내려오면 여원재라고...
저 앞에 남원 함양간 24번 국도가 보이고 마을이 보이고 고남산 위의 중계탑도 보이고.
"야호 다 왔다..........."
완주의 보람이나 뿌듯함보다는 고난의 길이 끝났음이 그저 시원할 뿐...
차를 가지러 성삼재로 가면서 뱀사골에 들어서니 아침의 얌전한 계곡물은 누런황토물로 엄청나게 불어있었고 길 옆의 지계곡조차 폭포수로 변해있었다.
원래는 숯불구이로 하산주를 곁들일 예정이었으나 춥고 배고프고 게다가 무서운기세의 계곡물보니 그나마 밝을 때 빠져나가야겠다 싶어 고속도로 나들목 가까운 생초의 매운탕집에서 메기매운탕으로 허기와 한기를 달랬다.
얼큰한 경상도 음식이라 들러리는 맛있게 먹는데 다른 분들은 잘 드시지 못하는것 같아 마음속으로 쬐끔 죄송했다.
밤 한시. 길도 밀리고 오다가 차 세워놓고 자고 그러다 돌아오니 우리 아들 혼자 거실에서 자고있는데 식탁위에 작은 냄비가 올려져 있어 열어보니 미역국이었다.
아마도 아이 데려다 놓으면서 아버님이 가져다 두신 듯
아뿔싸... 산에 가는데 미쳐 신랑 생일도 잊어먹었군.
출발일인 토요일이 신랑 생일이었는데 머리속이 온통 백두대간으로 꽉차서, 그리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늦잠까지 자서 생일 아침에 찬밥 먹고 나왔다.
"어떡해요? 자기 생일도 잊었네 "
" 괜찮아. 대신 좋은데 갔다 왔잖아. "
들러리도 이제 목인의 들러리에서 서서히 벗어나 중증 오지인 단계로 접어드드나보나.
하나는 성삼재를 출발하여 처음 만나는 봉우리로 1248미터, 구례에 있는 고리봉이라 하여 구례고리봉이라고도 부른다. 또 하나는 정령치에서 북서쪽으로 솟구쳐 오른 고리봉으로 1304미터, 남원시에 있다고해서 남원 고리봉 또는 큰 고리봉이라 부른다.
이 고리봉에서 지리산의 주능선 일부인 서북릉이 세걸산 바래봉 덕두봉까지, 대부분의 대간 종주꾼들은 차라리 대간을 버리고 서북릉을 향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만큼 힘차게 뻗어나가고, 대간은 오히려 능선의 형태조차 희미해진 채 고기리 쪽으로 급격하게 몸을 낮춘면서 대간의 명맥을 이어 나간다.
능선길이라 하기엔 그냥 급한 비탈 하산길 같은 길은 빗물로 미끄럽고 스틱을 안가져간 산울림님과 나는 연신 미끄덩 거리면서 내려갔다. 미끄럼길도 잠시 이내 예전의 백무동 하산길 같은 기분 좋게 완만한 능선길이 나타나고 들러리 한마디 하는데
"이건 비단길이네"
물론 서역에 이르는 메마른 사막의 비단길이 아니라 비단을 깔아 놓은 듯이 부드럽고 기분좋은 길이었다. 고도가 높을때는 활엽수림이었는데 조금 더 내려가니 소나무 숲길에 솔잎이 깔려있어 푹신푹신하여 젖은 등산화의 고통도 잊고 달려 보기도 하고 걸음걸이에 리듬을 주면서 춤추듯이 걸어도 보았다. 비까지 그쳐서 우의도 벗고, 젖은 머리도 바람에 말리면서 발아래 고기리와 운봉의 너른 들에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모습까지 완상하면서 .....
고기리 삼거리에 이르러 만난 민가에서 농사일 하다 잠시 쉬려고 만든 듯. 어설프나마 비가림천막까지 쳐 있는 평상에서 라면과 찬밥으로 차려진 그러나 황제의 밥상보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퉁퉁 불어터진 발도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면서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끝낼 무렵 평산님의 단호한 외침
"출발 5분전입니다"
그러나 채 5분도 되기전에 기다렸다는듯이 비가 쏟아지고 고기리 삼거리에서 대간은 상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기다린다. 암릉길도 아니고 숲길도 아닌 아스팔트 2차선 포장도로... 설마 이 포장도로가 대간길일까 하면서, 바로 옆 계곡 건너편의 안터마을 쪽은 아닐것이고 이쪽이다 짐작되는 길을 따라 가다가 어 길을 잘못 들었나봐... 다시 마을길을 되돌아나와 어떤 분이 친절하게 달아둔 표지기를 발견, 포장도로가 바로 대간임을 확신하고 걷는데 빗방울은 점점 굵어져 아예 들이붓는다.
비 맞는거야 상관이 없는데 등산화가 점점 무거워지고 신발속이 미끄러워 저 앞 빗속에 솟아있는 수정봉 구간의 능선을 오르고 내릴 일이 걱정이었다.
대간종주기와 지도에는 대부분 가재마을이라고 적혀있는데 현지에서는 노치라는 한자이름 뿐.
수정봉 아래 노치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마을의 주인자리를 차지하고 그 아래 나란히 표지석 두개. 하나는 대간과 14정맥, 하나는 대간상에 위치한 노치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대간상의 마을로 노치마을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바로 다음 구간인 매요리도 대간이 마을 귀퉁이를 뚫고 지나가니까)
어쨌든 오래된 나무의 편안함과 엄숙함 그리고 우아함까지 감상하면서 다시 증명사진 한장 찍고 마을 안길을 돌아들어가니 노치샘이 있었다. 해발 550미터. 그래서일까 해발 800미터가 넘는 수정봉이 야트막한 뒷산 같았다. 이웃마을의 지명도 높은터라는 뜻의 고기리. 수정봉 능선은 남원쪽에서 보면 높디 높은 산줄기인데 이쪽에서 보면 야트막한 야산자락으로 보일 뿐이다.
노치샘 한켠에 선 이정표에는 여원재 6.6킬로미터... 만만찮은 예감이 들었고 돌아보니 지리산 서북릉이 아름답게 뻗어 있어 잠시 사진 한두장 찍다보니 일행은 또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뒤쳐진 상태에서 일행을 따라잡느라, 게다가 점심 먹은 후 첫 오름길이라 그런지 무척 숨이 가쁘고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했다. 신발 속은 미끄럽고 발바닥과 발끝이 아파 오는데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소나무 숲길 능선은 올랐다 내렸다 끝도없이 이어졌다. 잠시만 걸음을 늦추면 앞사람의 꼬리도 안보이고 쫒아가느라 헉헉대면서 따라가면 또 출발하고....
낯선 길은 더 먼 법이라 했던가?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 안에서는 이정표나 안내판이 잘 되어 있어 무슨 봉우리인지, 갈길이 얼마나 되는지 예상을 할 수가 있었지만, 공원구역을 벗어나니 대간꾼들이 달아 놓은 빨갛고 파란 표지기 외엔 암런 안내판도 없어서 여기가 어딘지 금방 지난 봉우리가 수정봉이 맞는지 이 안부가 입망치 맞는지 여원재까지는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 속으로 걸음 수를 세어 보기도 하고 오른쪽에 지나는 나무 그루 수를 세어보기도 하고 아무리 가도가도 소나무 숲길만 이어질 뿐 여원재 위에 솟은 바위는 나타날 줄을 모른다.
오후 네시.. 언뜻 보니 저 앞에 솟은 봉우리 뒤로 멀리 고남산 중계탑이 보여 일행들에게 자신만만하게 저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라고 했는데
언젠가 여울님이 올린 노래 김민기의 "봉우리"가 그 가사대로 재현될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무너진 나무 등걸에는 앉을 틈이 없었지만....
스틱 하나를 오름길에는 내가, 내림길에는 들러리가 번갈아 썼는데 발이 아파오자 내리막길이 시작되어도 모른 척 내가 가지고 가기도 하고 두어번 엉덩방아를 찧자 아예 나 혼자 쓰라 한다 마음속에서는 고맙단 말이 나왔는데 무뚝뚝한 경상도 아지매 목을 넘어온 말은
" 아 괜찮네요 마"
" 평산님 물 한잔 드릴까요?" 하는 펌프킨님의 친절에
"됐어요." 하며 뚝 자르는 (뜻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정도라는데 듣는 사람은 글쎄?)평산님이나 나나 구제불능.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 계속되는데 언뜻 정면에 바위가 보인다. 아 저 바위구나.
남원쪽에서 차를 타고 올라오면 왼쪽 봉우리 중간에 서있는 거대한 바위...
누군가의 종주기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왼쪽에 산판길이 나타나고,
빽빽한 잔솔 숲 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옹색한 산길이 나타나고
그리고 내려오면 여원재라고...
저 앞에 남원 함양간 24번 국도가 보이고 마을이 보이고 고남산 위의 중계탑도 보이고.
"야호 다 왔다..........."
완주의 보람이나 뿌듯함보다는 고난의 길이 끝났음이 그저 시원할 뿐...
차를 가지러 성삼재로 가면서 뱀사골에 들어서니 아침의 얌전한 계곡물은 누런황토물로 엄청나게 불어있었고 길 옆의 지계곡조차 폭포수로 변해있었다.
원래는 숯불구이로 하산주를 곁들일 예정이었으나 춥고 배고프고 게다가 무서운기세의 계곡물보니 그나마 밝을 때 빠져나가야겠다 싶어 고속도로 나들목 가까운 생초의 매운탕집에서 메기매운탕으로 허기와 한기를 달랬다.
얼큰한 경상도 음식이라 들러리는 맛있게 먹는데 다른 분들은 잘 드시지 못하는것 같아 마음속으로 쬐끔 죄송했다.
밤 한시. 길도 밀리고 오다가 차 세워놓고 자고 그러다 돌아오니 우리 아들 혼자 거실에서 자고있는데 식탁위에 작은 냄비가 올려져 있어 열어보니 미역국이었다.
아마도 아이 데려다 놓으면서 아버님이 가져다 두신 듯
아뿔싸... 산에 가는데 미쳐 신랑 생일도 잊어먹었군.
출발일인 토요일이 신랑 생일이었는데 머리속이 온통 백두대간으로 꽉차서, 그리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늦잠까지 자서 생일 아침에 찬밥 먹고 나왔다.
"어떡해요? 자기 생일도 잊었네 "
" 괜찮아. 대신 좋은데 갔다 왔잖아. "
들러리도 이제 목인의 들러리에서 서서히 벗어나 중증 오지인 단계로 접어드드나보나.
출처 : 오지의 마을과 산과 계곡
글쓴이 : 목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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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 > 등산 트레킹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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