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를 쓰기에 앞서 대간 종주에 대한 오해 몇가지만 풀어보겠습니다.
1. 대간 종주는 특별한 사람 또는 전문 산꾼이 하는 것이다.
--- 아니다. 대간은 대부분 600미터 이상의 고개에서 시작하여 10~15킬로정도의 구간을 끊어서 능선을 타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700미터급 산을 등산하고 하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덜 힘들다.
2. 대간 종주꾼들 때문에 백두대간 마루금이 다 망가졌다.
----역시 아니다. 마루금은 채석장이나 도로공사. 임도 같은 것들 때문에 훼손되는 것이지 대간꾼들이 밟고 다닌다고 해서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3. 30년쯤 후엔 대간종주가 쉬워진다. 왜냐? 사람들이 하도 밟아 닳아서 고도가 분명 낮아질 것이고 그만큼 종주는 쉬워질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년 후엔 낮아진 대간에라도 갈 체력이 남아 있을까?
4. 대간 종주는 오지의 산과 계곡을 찾는 우리 카페와는 성격이 좀 안맞는다.
---이건 진짜 아니다. 우리 나라의 오지마을은 거의 백두대간근처에 또는 낙동 정맥 근처에 숨어있기 때문에 대간 종주를 하다보면 자연히 꽁꽁 숨은 오지마을과 만나게 된다. 이번 5차 종주에서도 장수군 지지리라는 오지마을에서 달빛 고운 하룻밤을 함께 했다. 2005년도 여행계획을 보면 여행예정지의 절반 이상이 대간 마루금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다.(예를 들면 영춘 검우실, 봉화 참새골, 설피밭, 선자령, 광대곡...)
후기가 안 올라오는 모임과 여행이 벌써 몇번 째 되는 것 같아서 잠시 시간 내어 간단히 올리자 한 것이 서설이 길었습니다.
출발 전날 저녁 (종주팀 용어로 발일일전)
오랫만에 겨울 먼지를 털어내는 비가 내린다.
어쩌면 산에는 눈이 쌓였겠구나.
첫눈을 산에서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신랑을 기다리는데
좀 일찍 오겠다는 들러리가 예정시간보다 한참이나 늦다.
전화를 걸어 길을 재촉하는데 육십령을 지나는 중 눈이 온다고 한다.
작년 겨울 서울 갔다 오다가 죽암휴게소에서 고속도로 진입하다가 한바퀴 빙 돈 경험이 있는지라 조심해서 천천히 오라고 신신 당부를 하면서도 내심은 진짜 눈이 오긴 왔구나 신이 난다.
새벽 다섯시. 이중삼중으로 울리는 알람에다가 모닝콜에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커피 한병 유자차 한병 김치 챙겼다.
새벽 여명을 뚫고 동이 틀무렵 지리산근처를 지나는데 백밀러로 일출이 보이고
정면에서는 백설에 덮힌 지리산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오늘쯤 천왕봉에 올랐더라면 삼대에 덕을 쌓지 못한 나 같은 사람도 멋진 일출을 볼수 있었을텐데...
눈덮힌 지리산을 보면 중학교때 교가가 절로 나온다.
"우러러 지리의 백설에 닿고 경호의 맑은 물결 고이 씻어서 그 이름 산청에 요람치는 곳....."
여고나 대학때의 교가는 다 잊어도 그때 함께 부르던 친구들 목소리까지 같이 기억이 날마큼 안잊혀지는 교가다.
먼산에만 눈이 보이더니 산청 휴게소를 지나면서 지리산 발치로 접어들자 길 옆 야산에도 소나무가지가 축축 늘어질만큼 눈이 쌓였다.
심설 산행이 힘들지 않을까? 마음이 반반인 들러리 굳이 꼬셔서 같이 나섰는데 걱정도 되었지만 마음속에서 믿는 구석하나 ...
기럭지 긴 평산이나 노르딕스키 선수같은 청솔님이 러셀을 해주시겠지
그런데 북쪽으로 갈수록 눈이 희미해진다. 아무래도 산청에 젤 많이 온 모양이다.
함양을 지나 서상으로 들어서니 언제나 그렇듯 준수한 외모에다 날선 바지로 멋낸 헌병들처럼 사방 잘 생긴 산들이 거수경례 붙이듯 반겨준다.
한때는 이곳에서 노년을 보내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육십령 정상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호들갑스레 악수도한고 껴안기도 하면서 인사를 나눈 후
우리 차를 세워두고 청솔님 차에 옮겨타고 무령고개로 가는데
국도를 벗어나 논개 생가지가 있는 대곡호수 께로 들어서자 길에는 눈이 얇게 깔려 있다.
2륜이지만 전륜구동이라 괜찮다고 자신만만한 청솔님
그런데 무령고개 오름길에 들어서 얼마 못가 차가 비틀거리는데 들러리 내려 밀고 초보님 밀고 나도 내려 밀었지만 포기하고 걸어야 할듯... 저 앞 고개마루는 왜그리 높아 보이는지...
앞서 가는 방장님 차는 씩씩하게 잘도 가신다. 운전하시는 분이랑 꼭 닮은 꼴로....
길 옆에 차 세워두고 배낭 챙겨 걸어가다가 데릴러 오신 방장님 차로 고개 정상에 닿았는데 볼에 와 닿는 공기가 싸늘한 것이 장난이 아니다.
완전군장 갖추어 영취산을 향해출발한 것은 아침 열시.
함양휴게소에서 아침먹고 곶감 사고 어쩌구하는 우리 땜에 출발이 좀 늦다.
영취산으로 오름길은 길을 내면서 만든 절개지 위로 아슬아슬하게 가는데 눈이 약간 쌓여 유난히 높게 느껴지면서 오금이 저려오는데 앞서가시는 청솔님은 평지를 걷는듯 날쌔게 나가신다.
개인적으로 산행때마다 출발 후 삼십분까지가 언제나 힘든데
가파른 오르막으로 정상을 향해 치닫는 길에 화사하게 피어난 상고대보느라 힘든 줄도 모른갑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도착한 영취산은 오늘 구간중 최고봉인데 여기서 대간은 또 하나의 가지를 치고, 그 가지가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에서 회문산을 거쳐 멀리 무등산까지 이어지는 호남정맥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 뼘 차이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날맹이의 동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함양 산청의 물레방아를 돌리고 진주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 남동해로 가고
북서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장수 무주땅을 지나 금강으로 흘러들어 서해로 가고
남서쪽으로 떨어진 놈은 지지리 계곡으로 스며들었다가 장수 남원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함께 조잘대고 몸을 부딧끼던 빗방울이 이렇게 한번 갈라지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취산에서 북쪽의 남덕유를 향해 대간은 조금씩 몸을 낮추다가 육십령을 지나면 급격하게 용틀임쳐 오른다.
완만하게 오름길과 내림길을 반복하면서 밋밋한 능선을 걷기를 서너시간
북서쪽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찬바람 닿지 않은 양지바른 능선에서 어김없이 조앤님 배낭에서 나온 위스키 한잔씩으로 속을 데운 후 따끈한 라면 곁드린 점심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 한잔하면 완벽한 풀코스 정찬이다.
전망대 바위에서 사진도 찍고
이름답지 않게 가파른 북바위에서 스카이 다이빙 흉내도 내어보고
977봉 따위로 불리는 이름없는 봉우리 거쳐 산불의 흔적으로 억새군락을 이룬 민령까지 능선은 부드러운 소풍길 같다.
대간에 처음 참가하신 초보님은 내내 좋구나.. 좋다를 연발하시고
무진장 칼바람에 노출된 왼쪽 뺨은 겨울이고 오른쪽 뺨은 봄이다(방장님 말씀)
대전통영선고속도로 육십령 터널 위쪽 깃대봉까지 오름길이 거의 유일한 오름길이었다.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에서 잠시 서상을 둘러싼 준령을 감상한다.
동쪽으로 황석산 거망산 에서 기백산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대간에 버금가는 힘찬 산줄기와
남쪽으로 까마득한 성벽처럼 올려다보이는 백운산과 원통재 계관산.
그리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거기 이 땅 산줄기의 한 축을 이루는 명산
눈덮힌 덕유산 능선이 파노라마를 펼친다.
채석장으로 만신창이가 된 육십령을 지나 남덕유에 이르기까지 북쪽 방향의 남덕유서봉(장수덕유산)과 가까이의 할미봉은 다음달 종주가 만만찮음을 넌즈시 일러주듯 말없이 나를 굽어보고 그 앞에 선 한없이 작은 나... 작은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 모아 지리산도 오르고 태백도 그리고 설악도 발아래 두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칠백킬로미터 대간을 내발로 밟아 보리라.
깃대봉에서 능선을 마무리하고 육십령으로 내려서는 중에 일행에 조금 뒤쳐져
어울림님과 들러리와 함께 대간종주꾼들의 생명수 구실을 하는 깃대봉 아래 샘에서 꿀맛같은 물 한모금 마셨다.
손을 씻던 들러리 왈
"햐.. 온수가 나온다"
좋은 샘일수록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찬 법이라. 이 샘의 명성이 높은 이유를 알듯하다.
오후 네시 조금 못되어 육십령에 내려섰다.
해발800미터 육십령은 고개가 하도 험해 호랑이도 나오고 산적도 많아서 육십명이 모여야만 넘을수 있는 고개였다. 그래서 고개 아래에는 주막마을이 성하여 해방전에는 육십령 양쪽에 주막만도 스물이 넘었다고 한다.
고개 서북쪽 진안고원은 우리나라 3대 다설지역의 하나로 북서풍이 고개를 넘기 전 품고 있던 습기를 눈으로 다 떨구는 곳이라 겨울엔 걸핏하면 교통이 두절되는 곳... 그 정상에 커다란 휴게소와 너른 주차장 끝에 심미안이 제로인 어떤 공무원의 발상으로 생겨났는지 팔각정이 있는데 다른 것은 다 봐줄만해도 이 팔각정만은 언제 봐도 생뚱스럽다.
다시 무령고개를 넘어 어둠이 무겁게 깔리는 비포장 길로 지지리로 들어서서 따끈한 구들장 기다리는 민박집을 찾았다.
민박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보면 인적끊긴 겨울 산골짜기의 냉기마냥 빈집이다.
여름 한철 민박을 하고 겨울엔 도회지로 나가는지 가는 집마다 빈집이네.
이거 원... 날은 이미 깜깜해졌고
용케 할머니 두 분이 사는 집을 찾아 들어갔는데 야박하고 인심사나워 좀 미운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뜨끈하게 편하게 널찍하게 하루를 보냈다.
방장님의 요리 솜씨 120퍼센트 발휘한 두루치기와 부대찌게로 소주한잔하고 다들 얼었던 몸이 녹는지 아홉시 뉴스도 시작하기 전에 골아떨어졌다.
산골에서는 밤도 빨리오고 그래서 아침도 빨리 온다.
1. 대간 종주는 특별한 사람 또는 전문 산꾼이 하는 것이다.
--- 아니다. 대간은 대부분 600미터 이상의 고개에서 시작하여 10~15킬로정도의 구간을 끊어서 능선을 타는 것이므로 실제로는 700미터급 산을 등산하고 하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덜 힘들다.
2. 대간 종주꾼들 때문에 백두대간 마루금이 다 망가졌다.
----역시 아니다. 마루금은 채석장이나 도로공사. 임도 같은 것들 때문에 훼손되는 것이지 대간꾼들이 밟고 다닌다고 해서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3. 30년쯤 후엔 대간종주가 쉬워진다. 왜냐? 사람들이 하도 밟아 닳아서 고도가 분명 낮아질 것이고 그만큼 종주는 쉬워질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년 후엔 낮아진 대간에라도 갈 체력이 남아 있을까?
4. 대간 종주는 오지의 산과 계곡을 찾는 우리 카페와는 성격이 좀 안맞는다.
---이건 진짜 아니다. 우리 나라의 오지마을은 거의 백두대간근처에 또는 낙동 정맥 근처에 숨어있기 때문에 대간 종주를 하다보면 자연히 꽁꽁 숨은 오지마을과 만나게 된다. 이번 5차 종주에서도 장수군 지지리라는 오지마을에서 달빛 고운 하룻밤을 함께 했다. 2005년도 여행계획을 보면 여행예정지의 절반 이상이 대간 마루금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다.(예를 들면 영춘 검우실, 봉화 참새골, 설피밭, 선자령, 광대곡...)
후기가 안 올라오는 모임과 여행이 벌써 몇번 째 되는 것 같아서 잠시 시간 내어 간단히 올리자 한 것이 서설이 길었습니다.
출발 전날 저녁 (종주팀 용어로 발일일전)
오랫만에 겨울 먼지를 털어내는 비가 내린다.
어쩌면 산에는 눈이 쌓였겠구나.
첫눈을 산에서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에 신랑을 기다리는데
좀 일찍 오겠다는 들러리가 예정시간보다 한참이나 늦다.
전화를 걸어 길을 재촉하는데 육십령을 지나는 중 눈이 온다고 한다.
작년 겨울 서울 갔다 오다가 죽암휴게소에서 고속도로 진입하다가 한바퀴 빙 돈 경험이 있는지라 조심해서 천천히 오라고 신신 당부를 하면서도 내심은 진짜 눈이 오긴 왔구나 신이 난다.
새벽 다섯시. 이중삼중으로 울리는 알람에다가 모닝콜에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커피 한병 유자차 한병 김치 챙겼다.
새벽 여명을 뚫고 동이 틀무렵 지리산근처를 지나는데 백밀러로 일출이 보이고
정면에서는 백설에 덮힌 지리산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오늘쯤 천왕봉에 올랐더라면 삼대에 덕을 쌓지 못한 나 같은 사람도 멋진 일출을 볼수 있었을텐데...
눈덮힌 지리산을 보면 중학교때 교가가 절로 나온다.
"우러러 지리의 백설에 닿고 경호의 맑은 물결 고이 씻어서 그 이름 산청에 요람치는 곳....."
여고나 대학때의 교가는 다 잊어도 그때 함께 부르던 친구들 목소리까지 같이 기억이 날마큼 안잊혀지는 교가다.
먼산에만 눈이 보이더니 산청 휴게소를 지나면서 지리산 발치로 접어들자 길 옆 야산에도 소나무가지가 축축 늘어질만큼 눈이 쌓였다.
심설 산행이 힘들지 않을까? 마음이 반반인 들러리 굳이 꼬셔서 같이 나섰는데 걱정도 되었지만 마음속에서 믿는 구석하나 ...
기럭지 긴 평산이나 노르딕스키 선수같은 청솔님이 러셀을 해주시겠지
그런데 북쪽으로 갈수록 눈이 희미해진다. 아무래도 산청에 젤 많이 온 모양이다.
함양을 지나 서상으로 들어서니 언제나 그렇듯 준수한 외모에다 날선 바지로 멋낸 헌병들처럼 사방 잘 생긴 산들이 거수경례 붙이듯 반겨준다.
한때는 이곳에서 노년을 보내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육십령 정상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다
호들갑스레 악수도한고 껴안기도 하면서 인사를 나눈 후
우리 차를 세워두고 청솔님 차에 옮겨타고 무령고개로 가는데
국도를 벗어나 논개 생가지가 있는 대곡호수 께로 들어서자 길에는 눈이 얇게 깔려 있다.
2륜이지만 전륜구동이라 괜찮다고 자신만만한 청솔님
그런데 무령고개 오름길에 들어서 얼마 못가 차가 비틀거리는데 들러리 내려 밀고 초보님 밀고 나도 내려 밀었지만 포기하고 걸어야 할듯... 저 앞 고개마루는 왜그리 높아 보이는지...
앞서 가는 방장님 차는 씩씩하게 잘도 가신다. 운전하시는 분이랑 꼭 닮은 꼴로....
길 옆에 차 세워두고 배낭 챙겨 걸어가다가 데릴러 오신 방장님 차로 고개 정상에 닿았는데 볼에 와 닿는 공기가 싸늘한 것이 장난이 아니다.
완전군장 갖추어 영취산을 향해출발한 것은 아침 열시.
함양휴게소에서 아침먹고 곶감 사고 어쩌구하는 우리 땜에 출발이 좀 늦다.
영취산으로 오름길은 길을 내면서 만든 절개지 위로 아슬아슬하게 가는데 눈이 약간 쌓여 유난히 높게 느껴지면서 오금이 저려오는데 앞서가시는 청솔님은 평지를 걷는듯 날쌔게 나가신다.
개인적으로 산행때마다 출발 후 삼십분까지가 언제나 힘든데
가파른 오르막으로 정상을 향해 치닫는 길에 화사하게 피어난 상고대보느라 힘든 줄도 모른갑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도착한 영취산은 오늘 구간중 최고봉인데 여기서 대간은 또 하나의 가지를 치고, 그 가지가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에서 회문산을 거쳐 멀리 무등산까지 이어지는 호남정맥이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한 뼘 차이로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날맹이의 동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함양 산청의 물레방아를 돌리고 진주를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 남동해로 가고
북서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장수 무주땅을 지나 금강으로 흘러들어 서해로 가고
남서쪽으로 떨어진 놈은 지지리 계곡으로 스며들었다가 장수 남원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함께 조잘대고 몸을 부딧끼던 빗방울이 이렇게 한번 갈라지고 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취산에서 북쪽의 남덕유를 향해 대간은 조금씩 몸을 낮추다가 육십령을 지나면 급격하게 용틀임쳐 오른다.
완만하게 오름길과 내림길을 반복하면서 밋밋한 능선을 걷기를 서너시간
북서쪽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찬바람 닿지 않은 양지바른 능선에서 어김없이 조앤님 배낭에서 나온 위스키 한잔씩으로 속을 데운 후 따끈한 라면 곁드린 점심
그리고 후식으로 커피 한잔하면 완벽한 풀코스 정찬이다.
전망대 바위에서 사진도 찍고
이름답지 않게 가파른 북바위에서 스카이 다이빙 흉내도 내어보고
977봉 따위로 불리는 이름없는 봉우리 거쳐 산불의 흔적으로 억새군락을 이룬 민령까지 능선은 부드러운 소풍길 같다.
대간에 처음 참가하신 초보님은 내내 좋구나.. 좋다를 연발하시고
무진장 칼바람에 노출된 왼쪽 뺨은 겨울이고 오른쪽 뺨은 봄이다(방장님 말씀)
대전통영선고속도로 육십령 터널 위쪽 깃대봉까지 오름길이 거의 유일한 오름길이었다.
오늘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깃대봉에서 잠시 서상을 둘러싼 준령을 감상한다.
동쪽으로 황석산 거망산 에서 기백산 금원산으로 이어지는 대간에 버금가는 힘찬 산줄기와
남쪽으로 까마득한 성벽처럼 올려다보이는 백운산과 원통재 계관산.
그리고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거기 이 땅 산줄기의 한 축을 이루는 명산
눈덮힌 덕유산 능선이 파노라마를 펼친다.
채석장으로 만신창이가 된 육십령을 지나 남덕유에 이르기까지 북쪽 방향의 남덕유서봉(장수덕유산)과 가까이의 할미봉은 다음달 종주가 만만찮음을 넌즈시 일러주듯 말없이 나를 굽어보고 그 앞에 선 한없이 작은 나... 작은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 모아 지리산도 오르고 태백도 그리고 설악도 발아래 두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칠백킬로미터 대간을 내발로 밟아 보리라.
깃대봉에서 능선을 마무리하고 육십령으로 내려서는 중에 일행에 조금 뒤쳐져
어울림님과 들러리와 함께 대간종주꾼들의 생명수 구실을 하는 깃대봉 아래 샘에서 꿀맛같은 물 한모금 마셨다.
손을 씻던 들러리 왈
"햐.. 온수가 나온다"
좋은 샘일수록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찬 법이라. 이 샘의 명성이 높은 이유를 알듯하다.
오후 네시 조금 못되어 육십령에 내려섰다.
해발800미터 육십령은 고개가 하도 험해 호랑이도 나오고 산적도 많아서 육십명이 모여야만 넘을수 있는 고개였다. 그래서 고개 아래에는 주막마을이 성하여 해방전에는 육십령 양쪽에 주막만도 스물이 넘었다고 한다.
고개 서북쪽 진안고원은 우리나라 3대 다설지역의 하나로 북서풍이 고개를 넘기 전 품고 있던 습기를 눈으로 다 떨구는 곳이라 겨울엔 걸핏하면 교통이 두절되는 곳... 그 정상에 커다란 휴게소와 너른 주차장 끝에 심미안이 제로인 어떤 공무원의 발상으로 생겨났는지 팔각정이 있는데 다른 것은 다 봐줄만해도 이 팔각정만은 언제 봐도 생뚱스럽다.
다시 무령고개를 넘어 어둠이 무겁게 깔리는 비포장 길로 지지리로 들어서서 따끈한 구들장 기다리는 민박집을 찾았다.
민박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보면 인적끊긴 겨울 산골짜기의 냉기마냥 빈집이다.
여름 한철 민박을 하고 겨울엔 도회지로 나가는지 가는 집마다 빈집이네.
이거 원... 날은 이미 깜깜해졌고
용케 할머니 두 분이 사는 집을 찾아 들어갔는데 야박하고 인심사나워 좀 미운 생각마저 들었지만 그래도 뜨끈하게 편하게 널찍하게 하루를 보냈다.
방장님의 요리 솜씨 120퍼센트 발휘한 두루치기와 부대찌게로 소주한잔하고 다들 얼었던 몸이 녹는지 아홉시 뉴스도 시작하기 전에 골아떨어졌다.
산골에서는 밤도 빨리오고 그래서 아침도 빨리 온다.
출처 : 오지의 마을과 산과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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