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을 듣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피요르 마을에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놓은 후 밖으로 나가 우산을 쓰고 피요르 해안을 산책했다. 고요하고 투명하고 예쁜 마을의 평화로운 아침이 빗속에서 밝아오고 있다.
아침 식사후 어제 저녁 늦게 들어왔던 길을 다시 돌아나갔다. 길 양편으로 피요르의 해안과 만나는 좁고 비탈진 땅에 사과와 베리 같은 것을 키우는 과수원이 보인다. 사과는 우리처럼 적과를 하지 않아서 자그마한 것이 조랑조랑 달려있다. 송달 갈림길에서 해안길과 작별하고 어제 왔던 길과 반대편인 왼쪽 도로로 접어들어 큰 고개 하나를 넘었다. 비가 오니 폭포의 수는 더 많아지고 물줄기도 풍성했다. 고개를 넘고 호수변을 달리다 또 하나의 고개를 더 넘어 송네 피요르의 다른 쪽 만의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 피얼란드에 있는 빙하 박물관에 들어서니 마당에 매머드의 동상이 제일 먼저 반긴다. 안내서는 노르웨이어로 적혀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이곳 빙하에서 매머드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으로 짐작된다.
빙하박물관에서 두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로 구성된 빙하탐사대가 노르딕 산악스키와 등산장비를 갖추고 빙하를 탐사하는 다큐영화를 보았다. 생업에 목매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늘 아름답고 부럽다.
기념으로 동화 그림책을 한 권 살까 하고 기념품점을 둘러보았는데 열장 남짓의 그림책이 무려 2만원이나 한다. 작은 수첩만한 그림책도 만원이 넘고.
빙하박물관에서 영화를 보고 인근에 있는 뵈이야 빙하를 보러 갔다. 원래는 차에서 내려 몇걸음 걸으면 빙하였다고 한다. 어느 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도 이곳 빙하를 걷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빙하가 녹아 빙하의 끝이 까마득히 먼 산등성이 바로 아래에 있다. 빙하를 걸으려면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서 겨우 시작해야 할 판인데 빗줄기는 더 거세지고 있다. 아쉬운 마음에 건너편 다른 빙하의 쪼가리를 사진 찍었다. 다 녹아 거의 없어지고 조그맣게 남은 조각은 가면 무도회에 딱 어울릴 나비가면 모양과 골프채 모양의 또 하나, 온난화의 영향을 실감하고 돌아가면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고 웬만한 추위나 더위는 참아보기로 다짐한다. 잘 지킬 수 있으려나? 다시 5번 도로로 나오니 양쪽의 거대한 산군 사이로 길게 난 골짜기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양쪽은 커다란 바위덩어리 산으로 폭포가 쏟아지고 간간히 자그마한 호수도 있고 사이의 도로 양쪽 골짜기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골짜기가 끝날 무렵 호수가 내려보이는 그림같은 마을(SKEI)을 등 뒤에 두고 길이 다시 산위로 오른다. 중앙선도 없이 좁고 굴곡지고 경사진 커브길에서 버스라도 만나면 어떻게 지나쳐 갈까 무섭기도 했지만 양떼가 노니는 언덕 목장 지대를 지나니 저 아래 또 호수가 보인다. 호수인가? 아님 피요르인가?
호수와 바다와 마을이 그림같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그만 전망대가 있고 몇대의 자동차와 전망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우리는 지나쳐 간다. 가파른 내리막을 지그재그로 내려가 그림같은 마을(Utvik)에 이르러 여느 때 처럼 또 구글맵을 켜서 확인하니 송네피요르와 예이랑에르 피요르 사이에 있는 만만찬은 길이의 또 다른 피요르의 맨 안쪽 바다이다. 그 바닷가를 달리는 길 위에 차가 섰다. 앞에도 수십대의 차가 서 있고 맞은 편에서 차들이 오고 있다. 무슨 일인지 모르고 20분 정도를 기다려 마침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피요르만 연안마을인 Innvik마을과 Olden 마을 사이 뿔처럼 튀어나온 암벽 아래에 터널을 뚫어 길을 넓히는 공사 중이다. 지나오니 맞은 편에서 또 여러 대의 차들이 좀 전의 우리처럼 기다리고 있다. 피요르의 맨 안쪽 Leon을 돌아 스트린(Stryn)의 자그마한 호텔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짜지 않고 절이지 않아 담백하고 연한 연어구이가 아주 맛있었다.
호텔 송네피요르가 있는 마을 레이캉에르
피얼란드 빙하 박물관의 매머드상
뵈이야 빙하
나비가면 모양의 빙하 잔해
스케이에서 외트빅에 이르는 풍경
피요르 연안 마을 Utvik
스트린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스트린 지역의 액티비티가 소개된 작은 책자 하나를 호텔 인포에서 받았는데 정작 노르웨이어로 적힌 내용들은 하나도 읽을 수가 없어 그냥 기념품으로 넣었다. 다시 버스는 빗속을 달려 고개를 넘은 후 헬레쉴트에 닿았다. 근처에서는 제법 규모가 큰 마을로 여기서 우리는 게이랑에르 피요르를 둘러보는 배를 탔다. 크루즈라 하기엔 좀 소박하고 페리라 하기엔 좀 크고, 유람선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여전히 가는 비가 내리고 약간은 쌀쌀한 날씨지만 잔잔한 바다와 산들, 그 산 허리를 휘감고 도는 비안개, 그리고 폭포와 가끔씩 햇빛이 날 때마다 생기는 무지개가 뜨는 멋진 날씨였다. 한시간쯤 유람선을 탔는데 지도를 보니 백킬로가 넘는 세계에서 두번재로 긴 피요르의 10분의 일쯤 되는 맨 안쪽 끄트머리 구간이었다.
유람선의 종착지 게이랑에르 마을은 사방으로 막힌 좁은 병 속의 마을 같은데 수많은 캠핑카와 텐트들이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게이랑에르 마을 바로 뒤 깎아지른 절벽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을 올라갔다. 배에서 " 와 저런 직벽에도 길이 있고 집이 있네. 어떻게 저런 길을 차가 오를 수 있을까?" 했던 그 길이다. 오금이 저려 창밖을 내다보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기도만 하면서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화장실이 딸린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 폭포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도 있었다.
게이랑에르 피요르페리가 출발하는 헬레쉴트 마을
게이랑에르 페리가 지나는 피요르 연안의 마을들
만년설을 이고 선 산군
잘 보일지 모르겠지만 왼쪽 수직 절벽은 폭포이다.
이 협만을 돌아 들어가면 게이랑에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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