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정복된 뒤로는 지방행정구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격동의 역사 속에 여러 차례 약탈을 당했으며, 특히 1691년에 있었던 투르크인의 약탈은 매우 심했다.
11세기에 보그라티드인이 세운 대성당의 유적이 도심부의 언덕에 있으며, 이곳으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나 있다. 도시 외곽에는 12세기에 지은 겔라티 대성당과 수도원, 석회석 동굴과 공룡 화석이 있는 사타플리아 자연보호구역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에는 공업 중심지로서 트럭·펌프·채굴기·직물(특히 견직)·식료품 및 그밖의 소비재가 생산된다. 리오니 강에는 수력발전소가 있으며, 사범대학이 있다.
황금 양모와 이아손이야기
황금 양모(黃金羊毛, 그리스어 Χρυσόμαλλον Δέρας) 또는 금양 모피(金羊毛皮)는 그리스 신화에서 날개 달린 황금빛 양의 털가죽을 말한다. 이 전설은 이아손과 아르고 호의 원정대의 이야기에 나온다. 이 이야기는 상당히 오랜 기원이 있는 전설로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 당대에도 이야기가 존재했었으며 그 이후도 여러가지 형태의 이야기가나왔다. 가장 고전적인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경 아폴로니우스가 쓴 서사시 《아르고나우티카》에 나온다.
보이오티아의 왕 아타마스와 왕비 네펠레 사이에는 프릭소스와 헬레라는 아들과 딸이 있었다. 아타마스는 후에 이노라는 여자를 후처로 맞아들이는데 이 이노는 전처 네펠레의 자식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네펠레는 자신의 아이들을 살리려고 메르쿠리우스 신에게 기도하자 신은 키소말로스라는 이름의 날개달린 황금빛 양 한마리를 보내준다. 네펠레는 프릭소스와 헬레를 이 양의 등에 태워 먼 나라 콜키스로 보내는데 도중에 딸 헬레는 바다에 빠져죽고 프릭소스만 무사히 콜키스 땅에 이른다. 이때 헬레가 빠져 죽은 바다는 "헬레스폰토스" 즉, '헬레의 바다'로 부른다.
콜키스에 도착한 프릭소스는 이 황금양을 잡아서 신께 제사를 올리고 그 양의 황금모피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에게 선물로 준다. 아이에테스는 이 황금 양모를 전쟁의 신 아레스의 숲에 있는 떡갈나무 숲에 걸어놓고 결코 잠드는 일이 없는 용 한마리로 하여금 이 양모를 지키게 했다. <출처 위키백과>
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콜키스 왕국의 수도가 이곳이었다고 한다. 조지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지만 위의 사진에 등장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쇠락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내린 곳은 분수대가 있는 커다란 광장이다. 버스터미널과 맥도날드가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길가에서 승합차 형태의 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사진에서 보는 쿠타이시는 구도시이고 이곳은 아마 신시가지인 모양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거리를 걸었는데 환전소(은행), 식품점 같은 것이 많았고 제법 큰 규모의 몰이 있어 남편의 양말을 한세트 샀는데 품질이 많이 떨어졌다. 걸린 옷들도 스포츠 용품도 우리나라의 것과는 비교가 안되었다. 이곳 사람들이 한국에 열광하며 부러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로 가는 길은 숲이 우거진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아마도 소비에트연방시절에 지어졌음직한 길가의 아파트들은 저 안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몹시도 낡고 누추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압하지아 공화국 분리 독립 과정의 내전으로 그 곳에 살던 조지아인들이 쿠타이시 근처로 집단 이주했다던 곳이 이 곳이 아닐까 싶다. 돌아와서 확인해보니 그 짐작이 맞았고 다행인 것은 그들 대부분은 더 나은 곳으로 옮겨가고 지금은 빈집이 많단다.
오래된 도시는 어떤 형태든 그만의 매력과 향기가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바그라티 대성당과 모차메타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오래된 주택가와 시가지의 골목을 통과해야 했는데 네모로 각진 돌기둥을 박아 만든 유럽의 전형적인 돌길이었고 그 길로 차가 다니고 있었다.
모차메타수도원은 리오니강의 한 지류가 만들어낸 깊은 계곡이 휘감아 도는 산의 능선에 있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십여 분 걸어서 아치문을 들어서니 휴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다. 조지아인들은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때뭔에 휴일에 이런 곳을 가면 조지아의 결혼식을 구경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니 흰 셔츠에 발목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은 경쾌한 복장의 신랑과 신랑 들러리, 그리고 하얀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신부 들러리가 성직자 앞에 서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 몇마디, 그리고 긴 기도(축복?) 그리고 몇가지의 의식. 소박하고 진지하고 간단하다. 로컬가이드인 마리암에 의하면 이들은 이 세레모니를 마치면 레스토랑으로 가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술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마신다고 한다. 많은 친척들은 그곳으로 바로 오기 때문에 정작 결혼식장에는 친구들 몇 외 하객은 별로 없다.
결혼식 들러리를 서고 있던 신랑친구 한 녀석이 예식 도중에 우리를 돌아보고 "Are you from Korea?" 해서 그렇다 하니 느닷없이 "밥먹었어? 배고파? "한다. 한국말 배운 걸 써먹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치형의 금박 장식이 있는 제단은 소원을 비는 기도처인데 제단 아래쪽으로 무릎 걸음으로 기어들어가 앞으로 돌아나와 기도하기를 세 번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사람들이 정말 진지한 얼굴로 기어들어가고 기도를 한다.
약간 푸른 빛의 흰셔츠를 입은 이 미소년 들러리가 밥먹었어? 하고 물었다.
바그라티성당은 모차메타수도원과 묶어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가 복원과정에서 원형이 너무 많이 손상되어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하라는 유네스코 위원회의 권고를 수차레 들었지만 아래 사진에서 처럼 성당 건물 왼쪽의, 성당과 너무나 안어울리는 엘리베이터 시설 때문에 유산등록이 취소되었다.
성당 건물은 전형적인 조지아풍과 약간 다르다. 유럽의 정교회나 루터교회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아마도 푸른 지붕 때문이리라.
바그라티 성당이 쿠타이시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어 쿠타이시 시내와 그너머 카프카즈 산맥의 웅장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너른 들판과 강, 그리고 산자락, 도시의 입지조건으로 완벽해보인다. 게다가 아름답다. 이곳이 콜키스왕국의 수도였던 까닭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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