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국내여행기

지리산 한바퀴 겨울여행 둘째날 (구례에서 하동, 남해를 거쳐 삼천포로 빠지다)

목인 2014. 1. 29. 00:28

요구르트나 간편식으로 아침을 때우려고 지하 편의점으로 가니 아직 문을 안열었다.

나가다 적당히 해결하자고 하고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니 그새 문이 열려 푸딩과 따끈한 차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그곳 직원에게 사성암에 대해 물으니 안내책자와 지도까지 펴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사성암은 네분의 성인이 거쳐간 곳으로 백운산에서 구례 쪽으로 뻗어내린 계족산 끝의 오산 정상부근 바위봉우리에 올라 앉은 절이다.

사성암이 올려다보이는 산아래 마을에서 셔틀버스가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바위산 좁은 터에 있다보니 당연히 주차공간이 부족하고 길은 상상 이상으로 가파르고 좁아서 모두가 차를 가지고 올라가면 문제가 많을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에겐 일자리가 생기고 방문자들에겐 안전하게 오갈 수 있고 참 좋은 발상이다 싶었다.

가파르고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십여분 올라 정상 바로 아래 절에 닿으니 아침공기가 코끝을 알싸하게 쏜다.

법당으로 오르는 길도 가파른 바위 사이에 난 계단이었고 계단을 오르니 소원바위가 있었다.

조그만 나무토막이나 종이에 소원을 써서 매달아 놓았는데

돈많이 벌자, 사업번창 등 세속적인 소원이 대부분인 가운데 세상을 떠난 막내 남동생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누나의 소원지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소원지를 쓰지는 않고 바위 앞에서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이땅 모든 엄마들의 소원과 똑 같은 그런 소원을 ...

소원바위에서 오른쪽 바위를 보니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 형상의 바위가 있었고

좁은 바위 절벽 난간 또는 바위 사이 좁은 틈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니 자연관음상이 있었다.

바위 절벽의 절리부분이 끊어진 형상이 영락없는 관음상이었다.

관음상 옆 좁은 바위 틈의 도선굴을 지나자 세상이 환해지는 듯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발아래 구례 들판이 펼쳐졌다.

마애불이 어디 있나 살피며 오르다 보니 오산 정상에 닿았는데 거기 꼭대기에 차를 타고 구례를 지날 때면 늘 올려다 보이던 산 정상의 정자가 거기 있었다.

열시방향에 구례구역 주변의 풍경과 곡성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줄기부터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구레읍내와 너른 들판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더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지리산 연봉들, 엎드린 여자의 둔부 같은 반야봉과 그 아래 노고단, 왕시루봉이 줄지어 있고 발 아래로는 섬진강의 푸른 물줄기가 돌아 나간다.

남쪽으로는 백운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겹겹이 농담을 달리하며 겹쳐지고 더 멀리로는 아마도 순천으로 이어질 듯한 산줄기가 쉼없이 뻗어나가고 있어서 360도 조망이 되는 포인트였다.

바위 절벽에 앉은 사성암

구례구 쪽 전망, 긴다리는 새로 생긴 순천전주간 고속도로이고 작은 다리는 구례구와 구례를 연결하는 길이다.

소원바위

미소부처

자연관음상

구례읍내쪽 전망

오산정상의 파노라마 풍경

 

사성암에서 내려와 마을버스 주차장에 있는 매점 할머니가 직접 만드셨다는 검은콩 두부를 먹었다.

고소하고 적당하게 단단하며 곁들인 양념장은 감칠맛이 나고 시원한 맛의 김치가 어우러져 더할나위없는 남도의 맛인데다가 간단한 아침으로 인한 시장기가 겹쳐 네 여자는 허겁지겁 두부를 먹었다. 그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두 모 씩 포장을 했는데 한모에 칠천원, 조금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비닐봉다리들을 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섬진강 서쪽 강변길을 따라 내려가 운조루에 들렀다. 금가락지 형상의 길지라는데 정말 주변 산들이 원을 그리듯 운조루를 둘러싸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뵈었던 종부  할머니가 입장료를 천원 씩 받고 있었다. 등산로를 막고 통행세를 받는 절에 비하면 흔쾌한 마음으로 낼 수 있었다.

노블리스오블리쥬의 상징인 타인능해라 적힌 뒤주를 보았다. 어쩌면 운조루의 가장 가치있는 것은 이 뒤주가 아닐까 한다.

한때 사방 백리 정도를 뜨르르 했을 종가의 쇠락해가는 모습이 시골 고샅길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민낯의 종부 할머니 주름살 처럼 보여 마음이 불편했다.  

마당에 널이 있어서 각자 한번 씩 널뛰기를 해봤는데 어린시절 하늘을 날듯이 뛰어서 누구보다도 돋보이게 널뛰기를 했던 기억은 그저 기억일 뿐 힘없는 다리 때문인지 무거워진  몸때문인지 생각처럼 날렵하게 뛰지는 못했다.

뒷마당으로 가니 오래된 우물이 있어 소박하고 정겨운 뒷문과 함께 외가를 떠올리게 했다.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가장 따뜻한 시간으로 떠오르는 고성 학동의 외가 뒤꼍 담장과 쪽문과 우물과 너무 닮아 있었다.

 

운조루 대문 앞 연못

타인능해라 적힌 뒤주.

중문으로 보이는 안마당의 장독대

안채

사다리로 오르는 다락방이 있는 미니 2층

뒷마당의 우물, 화강암 사각돌이 이질감 그리고 무겁고 부담스러워 보인다.

학동 외갓집 뒷문과 똑 같은 ...

  

섬진강을 따라 하동으로 내려갔다.

노래처럼 떠들썩하지 않은 화개장터와 쌍계사는 지나치고 며칠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귀농인이 지은 찻집 '도시고양이생존연구소'를 찾았으나 엉뚱한 길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길가 찻집에서 발효차와 매실장아찌를 사고  내쳐 달려서 악양 평사리에 도착했다.

소설 '토지' 속의 최참판댁을 재현한 곳이지만 금방이라도 서희를 만날 것 같고, 핏기없이 예민한 최치수와 참판댁 마님이 금방이라도 나와 반겨 줄 듯한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누마루에 앉아 악양들을 내려다보며 다리쉼을 하고 각자가 본 소설이나 드라마속의 인물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다보니 세월 흐름이 진하게 느껴졌다.

 

 

 

 

 

 

 

 

 

원래 계획은 지리산 남쪽 자락을 돌아 산청 남사예담촌이나 덕계서원쪽으로 돌아 오려고 했는데 하동 송림을 지나면서 즉흥적으로 "바다 보러 가자."  하니 모두가 망설임없이 오케이 한다.  벚꽃이 핀 풍경이라 상상하며 섬진강변으로 난 새길로 남해대교를 건넌 후 독일마을을 차로 한바퀴 돌고, 내가 좋아하는 물미선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한 후에 다시 몇개의 연륙교를 지나 삼천포 어시장에서 회를 먹었다. 회는 이곳이 정말 싱싱하고 싸다.

돌아오는 길, 정말 돌아오고 싶지 않은 마음에 화물차가 줄지어 달리는 가고 싶지 않은 구마고속도로를 거쳐 대구를 지나니 갑자기 길이 평화로워졌다. 여행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늘 이렇게 아쉬운 평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