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국내여행기

지리산 한바퀴 겨울여행 첫날 (함양에서 구례까지)

목인 2014. 1. 29. 00:25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서로들 시간이 맞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던 여행을 떠났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고 설 지나면 곧바로 개학이라 정말로 마지막 일정이다.

첫날 아침 남은 식구들 먹을거리 준비해 놓고 가방 챙기고 하다보니 새벽 다섯시에 겨우 잠들어 깜빡 늦잠을 잤다. 서둘러 한시간 늦춤 알림 문자를 보내고 허둥지둥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약속 장소에서 세사람을 태우고 출발하니 정각 9시,

언제나처럼 막힘없이 상쾌한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군위휴게소에서 커피를 한잔 하고 내쳐 달려 함양에 도착하였다.

어릴 적 백전면에 있는 큰고모집을 갈 때면 숲 바로 옆에 난 길로 버스가 달렸다. 웃숲이라 부르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는 함양이 세련되고 살기좋은 땅 같은 느낌이 들어 부러웠다. 큰고모는 우리 친척 중에서 제일 풍족했던 집으로 매번 방학 때 마다 엄마는 우리를 고모집으로 보냈고 고모는 일주일 넘게 우리를 잘 먹이고 두둑한 용돈을 쥐어 보냈다. 국계리 큰집 당숙댁과 고성 학동의 외가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의 좋은 기억은 대부분 여기서였다.

몇해 전에 왔을 때와는 달리 상림 주변은 식당가와 카페와 정돈된 산책길 등 사람을 모으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그래도 겨울 상림은  쓸쓸했다.

나뭇잎은 말라서 바스락거리고 윤기없는 가지도 건조한 바람에 흔들리고 그 속을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아줌마들이 걸어갔다. 가을에 오면 좋겠다. 봄에 오면 더 좋겠다. 아니다 여름이 진짜 좋겠다 하면서 겨울숲만 빠진 기대들을 쏟아내며 숲을 천천히 한바퀴 돌아 남쪽 끝자락에 붙어있는 식당가 한집에 들어가 점심으로 가오리찜을 먹었다.

기대를 안해서인지 꽤 맛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도재를 올랐다.

몇겹을 겹쳐놓은 S자 도로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는데 날씨가 따뜻한 겨울날 전형적인 박무가 사진발을 가로막는 듯했다.

한참을 더 올라가 진짜 오도재를 넘어 벽송사에 들렀다.

둘렛길 때문인지 주변이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펜션이 많이 들어서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벽송사에 오르니 이름 그대로 벽송들이 반겨준다.

벽송사를 나와 실상사로 갔다.

마천을 지나면서 변강쇠 이야기도 하고....

겨울의 남쪽 여행은 늘 진흙탕을 각오해야 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실상사 경내는 온통 얼음이 녹아 진흙탕이었다. 신발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절이라기보다는 궁궐 느낌의 독특한 실상사 풍경과 동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천왕봉의 위용과 약사전 철불의 모습은 가슴에 담아둘 만 했다.

남원으로 가는 길, 미스내비는 고속도로로 가라고 자꾸 고집을 부렸지만 못들은 척 하고 국도를 달려 운봉을 지났다. 운봉고원의 지형과 눈이 많이 내리는 까닭, 이성계의 황산대첩지, 흥부전의 배경 등등 각자 아는 만큼씩 이야기하는 사이 남원에 닿았고 광한루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춘향은 여기 사람이고 이몽룡은 봉화사람이고 윤화언니네 학구에 생가가 있어 그런저런 이야기하며 광한루를 한바퀴 돌았다.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변한 게 별로 없는데 그래도 평일의 광한루는 걷기 좋은 곳이었다.

새집 추어탕으로 저녁을 먹을 작정이었는데 해가 많이 남아  구례에서 산채정식을 먹기로 하고 차를 달렸다.

화엄사 입구의 '그옛날 산채식당'에 이르니 밥때가 아니긴 하지만 아무도 없어서 좀 의아했는데 밥상을 받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할머니 아직 건강하시냔 냐 질문에 주인아저씨가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그래서일까 특 정식에 나오는 생선반찬은 괜찮았지만 나물이 그맛이 아니었다. 안타까웠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사위가 어두워져 서둘러 교직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가족호텔을 예약하고 그곳에 여장을 풀었다.

뜨근한 방에서 윷놀이를 했는데 나와 현주가 한팀, 최선생과 윤화언니가 한팀이 되었고, 두게임 다 우리 팀이 이겼다.

어젯밤 잠을 못자서인지 긴 운전 때문인지 나는 금방 골아 떨어졌다. 

 상림숲의 세미녀

 오도재는 아니고 오도재로 알려진 오도재로 오르는 길

 실상사

 실상사 약사전 철불

 광한루와 오작교

 오작교를 건너는 ...

 

그옛날 산채식당의 특산채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