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시골집 짓고 시골 살기

[스크랩] 10월에 내린 첫눈

목인 2005. 10. 28. 09:33




도회지의 학교에서는 여름겨울봄방학은 있는데 가을 방학은 없다.

설악산 단풍이니 내장산 단풍이나 이런 이야기들은 텔레비젼 뉴스에서만 보는 걸로 만족하고 단풍성수기 주말엔 움직일 엄두조차 못내고 살아온 그간의 세월을 한꺼번에 보상을 받았는데

가정체험학습일이라하여 지나 주말을 포함하여 내리 4일을 쉰 것이다.

어릴 적 농번기에 가정실습이라하여 바쁜 농사일을 거들라고 사나흘씩 학교를 쉬던 기억, 아주 오래전 초임 때 시골학교에서도 있긴했었다만...

시골로 와보니 사과 수확으로 년중 가장 바쁜 이때 그런 제도가 아직 살아있다.

아이들은 할머니댁에 , 큰댁에 사과따러 가기도 하고 더러는 부모님들과 견학도 가고 좀 여유 있는 집에서는 여행도 가고 그러는 모양인데 어쨌거나 지친 일상에서 정말 금쪽 같은 시간이었다.

첫날은 직원들과 함께 오대산 월정사에 들러 단풍을 보고 전나무 숲길도 걷고 소금강 계곡 등반도 했다.

평일인데도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대부분이 60-70 정도의 연세드신 분들이라서 산길 정체도 극심했고 옷깃 부딪히고 어깨 부딪히고 시끄럽고 어수선 했지만 산은 여전히 좋았다.

다음날은 진부에 가서 장작도 패고 두로령도 넘어보고 그럴려고 했는데 종일 비가 내린다.

갈까말까 망설이면서 금쪽 하루를 허비하고, 경기도 광주 어디쯤 목재,공구상에 볼 일 보러간 들러리 전화받고 저녁 나절에 나서 한밤중에 도착하였는데 비내리는 밤길 고속도로에도 사람과 차가 가득 찼다.

밤 열한시 넘어 진부에 도착했는데 차의 전조등에 비치는 빗방울의 움직임이 느슨하고 비딱한 것이 폼이 좀 이상타했는데 집마당에 내리니 함박눈이 쏟아지고 애나 어른 할 것없이 한밤중에 괴성을 지르고 야단이다.

 움막에 불 피우기는 좀 늦어 컨테이너에 들어가 히터 켜고 옥매트 불 올리고 만두 쪄서 허기를 달래니 배부르면 덜 춥다.

밤에 내리는 눈이 불빛 아래서 보면 꽃 나비떼 같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건너편 산에 단풍 위로 눈이 엷게 쌓인 것이 인간의 경치가 아니었다.

땅이 젖어 장작을 패거나 뒷산에 베어 놓은 통나무를 옮기는 일을 하기도 힘들려니와 눈구경 단풍 구경 바다도 구경할 겸 해서 오랫만에 진고개 넘어 주문진항에나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진고개정상 휴게소에는 평소의 한산한 모습은 간 데 없고 차가 진입하기도 힘들만큼 붐비는데 차에서 내리는 사람마다 탄성이다 

올려다보이는 동대봉과 노인봉은 눈 덮여 설경인데 주변 나무는 아직 단풍이 절정이니 탄성이 절로 나올 밖에....

주문진항 횟집 창밖으로는 집채만한 아니 산더미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파도 구경한다고 방파제로 올라가니 바다가 꼭 미쳐 들끓는 것 같다.

나중에 뉴스로 보니 우리가 거기 갔다 온 직후에 파도 구경하던 젊은 청년 한사람이 파도에 휩쓸려 갔다고 한다.

오후 햇살에 먼산엔 흰눈이 반짝거리고 집에 돌아오니 알맞게 어둠에 내려 있었다.

다음날은 통나무 나르고 장작패고 청소하고 하루종일 중노동으로 마감했다.

출처 : 오지의 마을과 산과 계곡
글쓴이 : 목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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