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어' 라든가 '젊은 애들이 무례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무례함은 젊은 또는 어린 사람들이 늙은 혹은 나이든 사람에게 하는 일상적인 행동처럼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진보단체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시국선언장에 난입해서 논리도 없고 명분도 없는 말로 젊은 학생들의 비웃을 사던 노인들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문득 두어 해 전에 뵜던 어떤 어른 한분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떤 어르신(혹은 나이든 사람)에게서 겪은 무례함...
타워크레인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몇년째 공사중인 신도시에서 살다가 소란스러움에 지쳐 이민 떠나는 마음으로 강원도 오대산자락에 조그만 땅을 마련하였다.
들어가 살지도 않을 서울 사람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라 산골 땅이지만 가격이 만만찮아서 무리를 했고, 덕분에 아직도 집을 짓지 못하여 중간 지점인 경북 북단에서 5년째 어정쩡한 생활을 하며 틈이 나면 가서 풀도 뽑고 돌멩이도 고르고 지내는 중이다.
작고 허름한 컨테이너가 우리에겐 멋진 별장 못지 않게 쉬고 싶을 때 쉴 공간이 되어 주었고 그날도 햇살 따가운 아침 나절 풀을 뽑고 흐르는 땀을 식히며 그늘에서 쉬는 중에 노인 한 분이 올라 오셨다.
아래 쪽 땅의 주인으로 이 분의 부인과 우리 신랑이 인사를 나눈 적이 있어서 신랑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런데 그 분은 자녀에게 무슨 사정인가 생겨서 땅을 팔려고 하신다며 몇 분과 땅을 둘러보러 오셨다 한다.
서울 무슨 외고 선생님이라고 들었고 그분도 부인을 통하여 내가 교직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시며 반가워 하셨다.
인상도 좋고 점잖아 보여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땅을 파신다니 아쉽다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또 한 분이 산이 있는 위쪽을 둘러보시다가 내려 왔다. 교양과 품위가 있어 보이는 노신사였다. 딱 거기 첫인상까지만...
외고 선생님은 그분이 서울 ㄷ외고 교장 선생님이라고 소개를 시켜 주셨고 그분께도 이 쪽도 선생님이라고 나를 소개시켜서 인사를 드렸다.
그 분은 어느 학교에 근무를 하느냐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처음 뵙는 분들이라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싶었고 그래서 경북의 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고 대답을 하니 그분은 어느 학교에 근무하느냐 다시 물으셨다.
나는 웃으면서
"예. 그냥 경북의 시골 초등학교에 근무합니다."
했더니 그분이 다시
"제가 어.느. 학.교.에 근무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시는데 무척 답답하고 한심해 하는 것 같았다.
답답하기로 말하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학교에 근무하는지 전혀 알 필요도 없는 분이 굳이 물어보지만 나는 내가 어디서 근무하는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그 분이 유명한 외고의 교장인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서로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예의 갖추어 인사만 나누고 나는 그분과 어떤 인간 관계도 맺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자꾸만 반복해서 물어오지 그것도 어른이 묻는데 네가 감히 다른 대답을 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니 사실 마음 속에서 불쾌한 느낌이 확 솟아올랐지만 앞 서 뵌 선생님 때문에 표현은 못하고 어떻게 표현을 하나마나 망설이는데 남편이 어디에 근무한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은 나보다 덜 못됐거나 마음이 좀 약하거나 어쨌건 나는 불쾌했다.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것은 쌍방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나는 굳이 앞으로 두 번 볼 지 안볼 지도 모르고 전혀 나랑 상관없는 사람에게 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로 몇마디 말을 더 주고 받았고 신랑은 꼬박꼬박 웃는 낯으로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졸지에 무례한 혹은 답답한 젊은 것이 되어 버린 나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예의란 것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기본 마음가짐이고 그것은 상대방을 존중해주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관심이나 호의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한다면 그것은 거두어 들여야 한다. 비록 그것이 호의에서 출발한 것일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그분 교장선생님은 내게 무례를 하였고 2~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분이 무례했다고 느낀다.
어른이 아이에게 무례한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쪽 땅은 팔렸고 이후로 그 선생님도 그 분의 부인도 그리고 그 교장선생님도 다시 뵙지 못했다.
글을 쓰다보니 불현듯 궁금증이 생겼다.
그 교장선생님은 왜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궁금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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