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대성당을 나와 점심식사를 한 후 대여섯명씩 나누어 벤츠 승합을 타고 로마 시내 곳곳을 돌았다. 로마시내투어는 어쩌다보니 영화 '로마의 휴일'과 함께 하게 된다.영화로의 접근이 가장 흥미롭고 대중적인 것 같다. 나는 역사 속에서 로마를 보고 싶었는데.
가장 먼저 간 곳은 판테온, 가둥이 없는 원통형 돔구조로 지금 기술로도 이런구조로 건축물을 짓는다는게 쉽지 않을 듯한데 2천년 전에 이런 건물을 지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도 사용할 수 있을만큼 온전하게 2000년을 견디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사진을 몇장 찍었지만 사진으로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판테온 내부를 찍으려면 폰을 아래에 두고 얼굴을 넣어 셀카를 찍을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간 곳이 트레비분수인데 영화에서는 그냥 작은 분수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분수라기보다는 지하를 흐르던 물이 땅으로 솟구치는 용천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조각의 규모나 아름다움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 가까이 접근하기도 힘든데다가 시끄럽기까지 한다.
바로 옆 가게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젤라또를 먹었다. 나는 과일 맛을, 남편은 미숫가루 맛을, 아들은 쵸콜릿 맛을 먹었는데 셋 다 맛있었다.
느긋하게 걸어다니며 며칠을 머무르면 좋겠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다니려다보니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볼 때 여러 장소의 감동이나 감흥이 뒤섞여버린다.
초기 로마인이 살던 집터이다. 3000년전 쯤 서민이 살았던 곳이고 그 위에 세워진 건물도 몇백년 된 곳이다. 로마시청으로 가는 언덕 아래에 있다. 가장 최신 건물이라는게 이탈리아 왕국 건국기념으로 지은 것인데 그것도 무려 200년이 넘었다. 로마에서는 시간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다.
로마시청으로 오르는 계단, 저 위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광장이 있고 청사 건물은 현재 로마시장의 집무실로 쓰인다. 원근법을 완벽하게 적용하여 설계한 광장 바닥은 실제보다 넓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옛로마의 귀족들이 모여살던 흔적이 무더기로 발굴된 포로 로마노가 내려다보이는 캄피돌리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현실 같지가 않다. 저곳 어드메쯤에서 카이사르는 웅변으로 시민들을 매료시키고 건물 뒤편의 길모퉁이에서 원로원 의원들이 음모를 모의하고, 어느 저택에선 귀족들의 웃음소리, 밀회, 파티, 그리고 암살 같은 일들이 벌어졌더란 말이지? 폐허는 언제나 아름답고 애잔하다. 무엇보다 저곳이 영화 세트장이 아니라 실재했었던 공간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장면때문에 유명해진 진실의 입이 있는 코스메딘 성모마리아 성당 앞. 진실의 입이라는게 사실은 로마시대 하수도 뚜껑으로 쓰였던 조각상이라는데 영화때문에 어뚱하게 유명해져서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온단다. 긴줄도 그러려니와 굳이 그 입에 손을 넣어보고 싶지 않아서 대신 성당 앞 거리를 구경했다. 여러 개의 돌로 깎은 기둥이 있는 건너편의 저 정자 같은 건물이 로마시대의 샘이라고 한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전차 경기 장면은 세트장에서 촬영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런 전차 경기장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베네치아 광장, 스페인 광장 등등 기억 용량을 초과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기대하던 콜로세움에 들렀다.
로마제국을 가능케 수많은 원정에서 개선한 로마군을 맞이하던 개선문과 양쪽 길가에서 개선한 병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는 햇볕을 가려주던 소나무 가로수길 가운데로 나는 로마군 백인대장처럼 위세당당하게 콜로세움으로 입장하려 했다. 사실 인간이 만들었다는 걸 믿기엔 너무 엄청난 원형경기장이라 미리 기가 죽어 십인대장 정도라도 감지덕지다 싶었는데 입장을 기다리는 이들이 만든 긴 줄, 얼마남지 않는 폐장시간을 알린 팻말 앞에서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대장의 기죽은 쫄병이 되어 뒤돌아섰다. 훗날을 기약하면 오늘의 포기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니 반대쪽 언덕에도 고대 로마인들의 주거지 유적이 있었다. 정말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어느 한산한 계절에 다시 오려하지만 로마엔 비수기가 없다니 연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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