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2017년 2월 겨울의 그랜드캐년

목인 2017. 2. 23. 12:29

새벽에 라플린을 출발하여 어둠 속에서 니들스, 불헤드시티 등 콜로라도 강가의 도시들의 띠 같은 불빛을 뒤로 하고 달리다 킹맨 근처의 휴게소에서 내려 커피를 한잔 마시고 윌리암스를 향해 내쳐 달렸다. 창밖 풍경은 사막에서 점차 녹색빛을 띠면서 나무가 듬성듬성 보이다가 키큰 나무의 숲이 보일 무렵 윌리암스에 닿았다.

맥도날드에서 맥모닝세트로 아침을 먹고 나오니 춥다. 빗방울도 떨어지기 시작하고.  

윌리암스에서 한시간쯤 더 그랜드캐년사우스림 쪽 시설이 있는 캐년빌리지에 이르니 눈발이 날리고 하늘은 온통 짙은 회색에 안개(구름인지?)까지 끼어 사방이 혼탁하다. 경비행기는 당연히 못뜬다하고 그랜드캐년의 장쾌한 풍경도 구름 속에 가려져 있어 우선 아이맥스 영화관으로 갔다. 예전에 한번 본 적도 있고 오늘 새벽 일찍 출발해서인지 잠이 와서 반도 못 본 것 같다.

밖으로 나왔을 때 눈은 그쳤지만 여전히 구름이 끼어 실망한 신랑은 구름사이로 보이는 바위 기둥을 보며 장가계 왔다 치자는 둥 해 가며 시간을 보내다 에고 다음에 또 오라는 싸인인 모양다며 버스로 돌아오는데 저쪽에서 갑자가 환호성이 들린다. 황급히 뛰어가보니 세상에 장막이 걷히고 신천지가 열리는 것 처럼 북쪽에서 찬바람이 내려와 구름을 빗자루로 쓸듯이 걷어내고 있었다.  그때의 환희와 희열과 카타르시스란.. .

광활한, 아니 광대한, 아니 거대한 풍경 앞에 선 나란 존재가 개미보다도 작아지는 듯한 순간이다. 저 아래 콜로라도 강에 황토색 강물이 굽이치며 흐르는 것이 또렷이 보인다. 지난번 왔을 때는 열기에 찌든 것 같아 감동이 덜했는데 비그친 후의 그랜드캐년의 진면목을 보는 듯하다.

캐납쪽으로 바로 가면 데저트뷰를 들를텐데 우리가 가는 곳은 들어올 때의 윌리암스를 지나 세도나를 가는 길이라 거긴 안들른대서 좀 실망하고 있는데 경비행기가 뜬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멀미 때문에 포기하고 신랑만 탔다. 나중에 보니 다들 멀미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언젠가 다시 오면 카이밥 트레일로 콜로라도 강까지는 못가더라도 중간까지라도 트레킹을 하며 수평선이 아닌 입체로써 그랜드캐년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