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시골집 짓고 시골 살기

송내관의 궁궐이야기 연수를 듣고

목인 2014. 7. 1. 21:11

조선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돈화문이 열리며 시작된 인조반정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아버지가 보시던 왕비열전, 야사 조선왕조실록(이조실록이라고 기억함) 등 주변에 역사적 안목을 길러 줄 수 있는 스승이 없었던 나는 아버지가 들려주시는 (드라마 같은) 왕비열전이나 이조실록(아버지의 표현이 그랬던 것으로 기억함) 이야기에 등장하는 왕이나 왕비, 후궁의 이야기 그리고 오로지 내가 읽은 책의 저자의 역사에 대한 견해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광해군과 인목대비 그리고 우리 집안의 조상인 정인홍이 등장하는 인조반정이야기를 자주 그리고 인상 깊게 들었고 기억한다.

초등학생이 읽기엔 너무 두껍고 작은 글씨가 빽빽한 '왕비열전'이었지만 읽을 책이 많지; 않았던 시절 몇 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그때마다 책속의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 극적이고 너무나 생생했다. 폐비윤씨 이야기, 문정왕후 이야기, 인목대비, 공빈과 인빈, 인현왕후와 장희빈, 정순왕후와 정조의 대립, 정조의 죽음, 그리고 철종과 조대비 수많은 자연중 언제나 나는 인목대비이야기와 그의 슬픈 아들 영창대군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그때 내겐 광해군은 너무 나쁜 임금이었고 반정으로 귀양을 갈 때 박수를 쳤다.

어머니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법적인 외할아버지를 죽인 패륜아, 동생을 죽인 냉혈한 정도로 기억했던 광해군에 대하여 처음으로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년 전, 중등역사교사모임에 친구 오빠를 따라 준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당시 광해군과 유성룡에 심취해 있던 윤희운선생으로부터 그에 대하여 듣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다.

이후 역사드라마의 시각에서 벗어난 역사를 알고자 다양한 역사책을 읽고  역사선생님들과 토론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가장 심취했던 인물이 광해군과 정조임금이었고 때마침 정조임금을 소재로 한 수많은 역사소설(원행 오세영, 영원한 제국 이인화 등)을 읽으며 당시 역사의 현장을 상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정조 임금과 관련된 역사 소설이나 기록은 정말 많았지만 광해군에 관하여서는 안타깝게도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광해군이 역사 소설이나 사극, 영화의 주제로 심심찮게 등장하더니 작년에는 드디어 영화 왕이 된 남자 '광해'가 나오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그 영화를 보지 않았다.

요즘 방영되는 사극의 주인공인 광해군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겸손하며 현명하다. 아마도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 덕이리라.

이 연수를 들으며 어쩌면 광해군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인조반정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랬다면 정말 조선 후기 권력을 틀어쥐고 개혁을 거부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기에 눈이 멀어 세상의 병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끝내 망국의 길로 이르게 한 서인세력의 득세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일제강점기도 오늘날의 남북 분단도 역사에서는 없는 일이 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그 순간 돈화문이 열리지 않았더라면 명분과 사대주의에 젖은 서인들이 200여년간 권력을 쥐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진 이후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 순간이 아쉽고 안타깝다.

정조의 죽음도 효명세자의 죽음도, 그리고 이 강의에는 안 나오는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어처구니없는 죽음도 다 아깝고 안타깝다. 그러나 어쩌면 그 모든 안타까움의 시작은 아버지 선조 임금을 대신하여 임진왜란의 전란을 극복하고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균형과 실리를 볼 줄 알았던 광해군의 몰락으로 시작된 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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