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동유럽 여행기5(멜크수도원, 그리고 길겐호수를 지나 할슈타트까지)

목인 2010. 8. 25. 20:13

여태 들른 호텔 중에서 가장 대규모이고 우리나라 호텔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 NH호텔 조식이 가장 좋았다. 다양한 빵과 싱싱한 야채로 가득찬 샐러드, 종류도 많고 깔끔하게 소포장된 치즈와 버터, 잼, 소스나 드레싱이 맛깔스럽고 구운 고기, 요거트, 햄, 소세지 그리고 푸짐한 과일, 향기로운 커피는 아예 포트째 테이블에 올려져 있어 마음껏 마셨다. 그래서 아침부터 포식을 하고 상냥하고 싹싹한 흑인 웨이터(전날 나에게 화장실을 가르쳐 준)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 친구 얼굴이 그렇잖아도 검은데 역광이어서 정말 새까맣게 실루엣만 나왔다.   

 

오늘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다.

비엔나를 출발하여 두어시간 달려서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된 멜크수도원에 도착했다.  소설 속의 윌리엄 수사님이 달려나와 맞이해 줄 것 같았는데 수도사 복장을 한 이는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수도원 유물을 전시한 내부를 둘러보고 긴 회랑 끝의 전망대에 이르자 인근 마을과 강과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장의 그림이 거기 있었다.

여기 오면 가장 보고 싶었던 장서각에 들어갔다. 사방 의 벽면을 꽉채운 장서각을 보자 감탄이 터져나왔다. 올가을에 집을 지으면 방 하나를 딱 이렇게 온 벽을 책으로 채우고 싶은데....

'장미의 이름'에서 윌리엄수사가 수도원장을 면담할 때

"귀 수도원의 장서각은 세계 최고가 아닙니까? 거기를 꼭 한번 보고 싶군요"

수도원장은 이곳의 모든 수도사들도 장서각 사서 수도사들을 통해서만 책을 빌릴 수 있다며 윌리엄 수사마저 거절당한 그 장서각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비엔나에서 기타 공부를 하며 부업으로 한다는 가이드의 설명 중에 

"금서 중에는 책장에 독을 발라 몰래 책을 읽는 수도사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고 하자 현주가

" 아!  그 책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어."

했다. 돌아가면 이곳의 풍경을 떠올리며 다시 '장미의 이름'을 읽어야 겠다.

특이하게 천정에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그려진 성당과 긴 회랑, 그리고 인근의 빨간지붕 마을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수도원 건물,  구불거리며 흐르는 강물과 완만하게 산으로 이어지는 구릉의 포도밭이 마치 중세에 와 있는 듯 신비감을 주었다.

 

 

수도원에서 건너다 보이는 중세 같은 마을 

인상적이었던 긴 회랑 

알프스에서 흘러 내려온 다뉴브강  

대성당 앞

장서각

장서 앞에서... 장서 앞의 둥근 것은 회의 내용을 기록한 두루마리 

 

화려한 성당 내부

차를 타고 떠나며 뒤돌아본 멜크 수도원

 

멜크수도원을 나와 또 평평한 고속도로를 두어시간 달려 오랫만에 큰 고개를 하나 넘자 주변에 멋진 산들이 보이고 호수도 보였다. 짤즈감머구트(소금창고라는 뜻). 거기 길겐이라는 아름다운 호숫가에 내려 돈까스 비슷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우리 일행은 두팀으로 나뉘어 우리팀은 유람선을 타고 다른 팀은 버스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이동을 했다. 알프스의 연봉들이 병풍을 치고 그 아래 호숫가에는 그림같은 집들이 있고 햇살은 밝고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고 그 풍경을 도취된 40분은 너무 짧았다.

내리기 싫다는 우리에게 가이드 진아씨는

"내려 보세요. 아마 감탄이 절로 나올 거예요"  

배가 닿은 곳은 모짜르트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생 볼프강 마을이었다.

선착장에서 버스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볼프강 마을을 관통하는 길이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고 요정이나 동화의 주인공들이 살 것 같은 집집마다 발코니나 창문에 하얗고 빨간 제라늄 화분을 걸어놓은  꽃마을 같았다.

호수와 산 사이의 옹색한 땅에 이처럼 예쁘고 발랄해 보이는 마을을 만든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구경하느라 자꾸만 늦어지는 우리에게 가이드가 여기서 놀라다 이제 가려는 마을을 보면 어찌 하실지 상상이 안된다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길겐 호수 마을로 들어는 고갯마루에서 

길겐 호숫가의 평화로운 풍경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건너면서 정면, 저 너머에 할슈타트가 있었다.

여유 만만의 요트 한척 

기슭의 그림 같은 마을 

 

 

 

 생 볼프강 마을의 초입

 예쁜 집들

 주차장 가득한 캥핑카들

 

다시 버스를 타고 산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 동화 속 마을은 할슈타트였다.

생 볼프강보다 더 좁은 땅(거의 절벽이라고 해야 할)에 좁다란 마을길을 끼고 오른쪽은 호수이고 왼쪽은 거의 절벽인데 그 길가로 마을이 있었다.

백설공주를 기다리는 일곱 난장이가 살 것 같은 집들, 길가 조그만 상점마다 내놓은 인간이 쓸 것 같지 않은 물건들, 예쁜 화분들, 그 길위에 오가는 사람들의 행복해보이는 표정까지 

마치 꿈속에서나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마을이 거기 있었다.   

호수 건너편엔 하얀 성이 있었고....  

할슈타트 마을 전경 

아기자기 예쁜 소품들 

 

 

 

 벽을 따라 거의 부조처럼 자란 배나무. 살아있는 것도 신기한데 배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이건 자두나무...

 소금광산지대임을 알려주는 각종 소금제품들

 어김없이 성당...

마을 끝 광장

 

할슈타트 마을에서 길겐 호수 쪽으로 되돌아나와 짤즈부르그로 향했다.

평평한 땅 유럽은 사라지고 창밖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들이 보이고 그 사이사이 호수가 있으면

어김없이 동화속 풍경 같은 예쁜 마을이 있었다.

두시간 남짓  짤즈부르그에 도착하였고 시내 초입의 어느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다들 별로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맛있었다.(큰일이다. 먹는 것 좋아해서) 탕수육이나 마파 두부 같은 건 그저 그랬지만 내가 워낙 좋아하는 녹두질금(숙주)이 푸짐하게 나와서 우리 테이블에서는 거의 나혼자 그걸 다 먹었다.

짤즈부르그 서쪽 외곽에 있는 west  뭐 였던가 이름이 기억 안나는 호텔에 짐을 풀고 일행들과 함께 인근 카페에서 맥주를 한잔 씩 마셨다. 호텔 주변은 전혀 짤즈부르그답지 않은 곳으로 멀티영화관이 발로 옆에 있었는데 우리나라와 똑 같이 솔트와 인셉션을 상영하고 있었다. 쇼핑몰도 있었는데 다 문이 닫혀있었다. 8시면 문 연 가게는 하나도 없을 거라고 말렸는데도 가방을 사러간 윤화언니 커플은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