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늦은 여름휴가를 베트남에서(둘~셋째날)

목인 2014. 9. 2. 00:48

편안한 잠을 푹 자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베트남 음식을 내 입에 잘 맞고 현지식 먹는 걸 우리 식구 모두 좋아해서 음식은 좋았으나 아침부터 더워도 너무 덥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객실로 돌아왔다. 오전은 자유시간이어서 호재와 신랑은 풀에 가고 나는 객실에 남아 쉬었다. 풀과 비치가 바로 붙어 있어서 아주 좋다며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신랑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다이빙까지 즐겼다나..

 

다낭은 베트남 중부의 항구도시로 참파왕국, 안남왕국 등 베트남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였다. 지금은 해안선을 따라 리조트가 개발되면서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시내를 살짝 벗어나면 멀리서부터 눈에 띠었던 풍경을 마주한다. 다낭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응우한썬Ngu Hanh Son이다. 목썬Moc Son, 호아썬Hoa Son, 터썬Tho Son, 낌썬Kim Son, 투이썬Thuy Son 등 5개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응우한썬은 한자어로 오행산(五行山)이다. 오행은 우주를 이루는 다섯가지 요소로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이며 이에 해당하는 각각의 봉우리가 다섯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투이썬은 동굴을 따라 관통하는 산이다. 흙벽에 새긴 부조와 동굴 곳곳 불상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하였는데 동굴 가장 아래 부분은 지옥, 156개의 계단을 올라가서 만날 수 있는 전망대는 극락이라고 했다. 계단을 기다시피 극락에 올랐다. 응우한썬의 나머지 4개 봉우리와 그 아래로 야트막하게 내리깔린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아닌 줄 알면서도 속으로 우리 아들 잘 자라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꽃도, 집도, 거리도 자연스런 모습이 참 좋았다



소낙비가 내린 후의 다낭은 제법 선선해졌다. 리조트에서 15km 가량 떨어진 호이안을 향해 길을 나섰다. 다행히 호이안에 가까워지자 비가 잦아들었다.

호이안은 무역항으로 특히 일본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지금도 거리 곳곳에서 일본 냄새를 느낄 수 있다.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베트남 중부를 유유히 흐르는 투본Thu Bon강과 지류가 하나로 이어지는 호아이Hoai강변의 자그마한 마을이나 16~17세기 무렵에는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상선이 드나들며 크게 번성했던 무역항이었다. 호이안을 소개하는 자료에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마을은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색채를 품게 되었다. 베트남 고유의 문화적 토대 위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문화를 두루 흡수하여 조화를 이뤄낸 고도古都 호이안은 이후 투본강의 수심이 얕아져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하게 되어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덕분에 베트남 전쟁의 파괴적 피해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고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작은 마을에는 다양한 국적과 외모의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강물 잔잔한 마을 가운데에 아치형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다리 '꺼우 라이 비엔Cau Lai Vien·來遠橋'이 있다. 호이안이 가장 번성했던 17세기, 특히 일본과 중국의 상인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각각의 마을을 형성했는데 당시 일본 상인들이 돈을 모아 두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라이 비엔은 멀리서 온 친구란 뜻이다. 호이안은 이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구분된다. 다리 주변에 중국 복건성 상인들의 회합장소였던 '쭈어 푹 끼엔Chua Phuc Kien·福建會館'과 베트남 상인 '풍흥Phung Hung'의 고택 등 옛 시간을 머금고 있는 명소가 이웃한다.

호이안의 옛 거리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 수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상점, 감각적인 디자인 숍 등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파스텔 톤의 건물과 선명하게 붉은 꽃을 달고 푸른 잎이 무성한 가로수가 선명한 색깔로 마을을 띄우는 것 같다. 유난히 커플 여행자가 많아 보였다. 손잡고 걷거나,나란히 자전거를 탄 젊은 연인들, 길을 향해 난 문을 활짝 열어 둔 찻집이나 음식점에서 테이블을 두고 마주한 연인들.... 젊은 시절 우리는 저런 것도 못해보고 벌써 반백이 되었나 싶어 회한과 부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길을 따라 자박자박 천천히 걸어보고 싶었으나 우리는 단체여행객이어서 그런 소소한 즐거움조차도 사치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