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트빌리시에서 예레반 가는 길

목인 2018. 9. 7. 23:35

트빌리시에서 예레반으로 오는 길은 대개 사다클로 에서 국경을 넘어 아흐파트 수도원과 알라베르디에 있는 사나힌 수도원을 들렀다가 데베드 협곡을 흐르는 데베드강과 나란히 달리는 M6도로로 바나조르를 거쳐 세반호수를 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로 상황도 제일 좋고 거리도 가깝다.

사다클로 국경검문소를 지나 아르메니아 영토로 들어서면 M6 도로는 평화롭게 흐르는 작은 강과 나란히 달리는데 이 강이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가르는 국경인 데베드강으로  북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쿠라강과 합류한다.  

아찔한 골짜기 데베드 협곡과 그 협곡이 만든 절벽 위의 평지에 들어선 특이한 지형의 알라베르디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멋진 호텔 Qepo에 딸린 역시 멋진 전망의 식당에서 아르메니아 전통악기인 두둑 공연을 보며 점심을 먹고 바로 위 아흐파트 수도원을 들렀다. 아흐파트 수도원에서 나와 급경사의 계곡을 내려와서는 사나힌수도원이 있는 알라베르디쪽으로 좌회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우회전하여 조지아쪽(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십여분 북쪽으로 달리니 아흐파트 수도원 갈 때 지났던, 산 뒤쪽에서 수도원 마을로 진입하는 굴곡진 도로 H25번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가 나왔다. 아흐파트 수도원이 있는 산을 뒤로 올랐다가 앞으로 녈가며 빙 돌아 원점으로 온 것이다. 바나조르 근처에 도로 공사로 길이 막혀서 다른 길로 간다 한다. 어째 좀 걱정이 된다. 단순히 둘러가는 거라면 모를까 도로 사정이 별로 안좋은데 덜 좋은 길로 간다니. . .  바나조르에 있다는 검은 수도원은 어차피 여정에 없으니 아쉬워 말기로...

데베드강을 따라 왔던 길을 한시간 가량 되돌아가 거의 사다클로 국경이 가까운 강가의 마을까지 돌아가서 아제르바이잔 국경과 나란히 달리는  M4 도로로 이제반을 거쳐 딜리잔에서 M6 도로와 다시 만난다.

갈림길에서 M4 도로롤 접어들자 외지고 굴곡이 심하고 폭이 좁은 길이 시작되었다. 한적하지만 강을 따라 비교적 평탄한 너른 골짜기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오른 쪽 산을 치고 오르는 고갯길을 만났다. 왼쪽의 골짜기는 점점 넓어지며 저 멀리 커다란 호수와 마이산 같은 멋진 바위 봉우리가 저 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갑자기 버스에 문제가 생겼는지 차를 세운다. 연기가 막 난다. 차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차를 투입할 상황도 못되는 것 같은데 연기를 내뿜으며 차가 서니 불안해진다. 이러다 노숙하는 건 아닌지.... 다행히 20분 정도 식히고 다시 출발한다. 더운 날에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니 버스가 몸살이 난 것 같다.  

 길가엔 블랙베리가 지천이다. 산을 넘어가는가 했는데 정상 아래 8부 능선 정도에서 더 이상 오르지 않고 옆구리를 타다가 다시 골짜기를 향해 내려간다. 좀 신기하다 싶어 구글 맵을 보니 국경이 좀 이상하다.

아르메니아 영토 안에 섬처럼  아제르바이잔 영토가, 반대 쪽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 좀 더 큰 섬 같은 아르메니아가 있다. 우리가 달리는 도로는 아제르바이잔과 섬 같은 작은 땅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좁은 아르메니아 땅을 달리고 있다. 게다가 지도 위의 길은 C자를 그리며 빙 둘러간다. 내리막 평지인 강가 골짜기를 두고 굳이 산을 올라왔던 상황이 이해가 된다.  

강은 아제르바이잔으로 흘러들어가고 저 아래 호수가 있는 곳이 아제르바이잔 땅이다. 치나러 가이드에게 구글맵을 보여주며 설명해 달라니 구글맵이 잘못 된 것이고 현재는 이 섬 같은  땅은 아르메니아라고 한다. 강이 만든 골짜기의 중간을 아제르바이잔의 영토가 산쪽으로 쭉 들어와 잘라먹은 것은 맞나보다. 평탄하고 가까운 땅을 두고 굳이 산을 올라가 다시 내려가는 험하고  긴길을 달려 이곳을 오가는 아르메니아 오지의 사람들에게 저 국경은 얼마나 야속할까?



영토 분쟁으로 현재도 전쟁 중인 두 나라의 국경이 가까운 변방이어서인지 가끔 무장한 군인들이 보초를 서는 군부대도 보인다. 길가의 집이나 건물들은 대체로 누추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좀 어두워보인다. 코카서스 3국 중 아르메니아의 경제사정이 제일 어려워보였다. 휴게소도 없고 따라서 화장실도 못 간다.

변방의 도시 치고는 번창해 보이는 이제반 근처에 깔끔하고 규모가 제법 큰 휴게소가 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현대식에 심지어 무료다. 휴게소에 딸린 마트에서 말린 살구와 과자를 샀다. 살구는 아르메니아의 주요 생산품목이다. 말린 살구 가격을 올려달라고 농민들이 시위를 하곤 한단다. 봄에 아르메니아에 가면 고흐가 말한 '창백한 분홍색의 살구나무 꽃'이 지천이겠다.

지도를 보니 사다클로와 예레반의 중간 쯤 되는 것 같다. 이제 반쯤 왔다고 도시 이름도 이제반인가 보다. 이제반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휴양지 분위기가 난다, 도로 상황도 좋아지고 길가에 호텔이나 리조트, 식당 같은 게 많이 보인다.

아르메니아의 알프스라는 딜리잔에 이르니 휴양지 분위기가 더 난다. 딜리잔이라는 마을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큰 고개를 올랐다. 고개 정상에는 터널이 있는데 터널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풀이 울창했는데 반대편은 고산 초지다. 해발고도가 2천미터란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세반 호수가 있다. 호수라기보다는 바다 같다. 이 건조하고 뜨거운 땅에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담수호가 있다는 건 신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호숫가를 이십분 정도 더 달려 예정보다 두시간 가량 늦은 오후 네시반. 서둘러 세바나 방크를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세반수도원에서 십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세반시티는 독특한 지형과 석양이 아름답다.  해발 2천미터에 가까운 고원인데다 바닷가처럼 바람이 부니 많이  춥다.  바람막이와 머플러론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예레반의 더블트리 호텔에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