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이야기/해외여행기

밀라노, 두오모와 광장

목인 2018. 5. 8. 11:08

베네치아에서의 꿈같은 시간은 딱 한나절이었다. 리알토 다리도, 베네치아의 뒷골목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수상택시를 타고 아침에 출발했던 바포레토 선착장으로 나왔다. 
인근의 한인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밀라노를 향해 출발했다. 
구글지도를 켜놓고 달리며 주변의 지형과 창밖풍경을 비교하며 달렸다. 베네치아를 출발할 무렵부터 내내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달리는 고속도로의 오른쪽 창밖 저멀리로 아스라히 보이던 알프스의 산줄기가 파도바를 지나고 비첸차를 지날 무렵에는 왼쪽은 들, 오른쪽은 산이 바짝 붙어 있고 도로는 평야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구릉의 중간을 지나고 있다. 창밖에는 포도밭과 와이너리로 보이는 낭만적인 풍경의 건물들이 가끔 보인다. 
베로나를 배경으로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한 영화 "Letters To Julliet"을 보면서 현실과 영화 속을 오갔다.  
베로나를 지나치면서 들르지는 않는단다. 내후년쯤 여름에 친구 부부랑 차를 빌려 베로나 오페라 축제가 열릴 즈음 이쪽을 여행할 계획이라 주변 지형들을 유심히 살피며 지나갔다.
 베로나 이정표를 지나치고 얼마 안있어 오른쪽으로 넓은 호수가 보인다. 가르다 호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풍광좋은 시골길을 조금 달려서 시르미오네에 도착했다. 가르다 호수안으로 촛대처럼 쑥 들어간 지형의 끝에 있어서 들어가는 길 양쪽이 모두 호수였고 정면으로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군이 보인다. 
맑고 잔잔한 호수와 몇 마리 청둥오리, 그리고 고풍스러운 집들, 고성, 젤라또 가게, 호텔들, 한 눈에 봐도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쉬러 오는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호숫가에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어김없이 1인1젤라또 하고 돌아나오는 길에 주차장에서 몇명의 남자들이 뭔가를 보며 웅성거리고 있어 가보니 영화에서만 보았던 번쩍거리는 금색의 롤스로이스가 있었다. 다른 차를 압도하는 건 금색의 번쩍거림 뿐 만이 아니었다. 길이가 옆에 주차된 일반 승용차의 1.5배는 넘어 보였다. 남편이 그 앞에서 부러워하며 사진 한장 찍어 달란다. 까짓거 차를 사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진 한 장 쯤이야 하고 찍어주니 이렇게 또 저렇게 여러 장을 찍어 달랜다. 차에 관해선 모든 남자들이 초딩같은 호기심과 집착을 드러낸다.   






이탈리아의 마지막 여정인 밀라노에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차 진행 방향으로 정면에 범상치않은 고딕 건축물이 점점 가까와진다.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It must be Milano duomo.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라는 별명 답게 밀라노는 세련되고 아름답고 화려했다. 쇼핑에 관심이 별로 없는, 아니 쇼핑할 돈으로 여행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울렛이나 쇼핑몰에서 보내는 시간은 좀 아깝다.  밀라노 아케이드는 눈요기거리로 좋았다. 쇼윈도 너머로 고급져보이는 가방이나 옷들에게 눈길을 애써 거두며 건물이나 바닥 같은 하드웨어에만 집중하며 다녀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끔씩 전통 극 이나 무용 같은 길거리 퍼포먼스가 보태지면 더 좋고. 


낮보다 밤에 더 아름다운 밀라노 두오모

이탈리아 통일을 이룬 임마누엘 2세의 이름을 붙인 쇼핑몰 밀라노 갤러리아 

통로 바닥에 타일 그림(로마의 건국 신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무스와 로물루스 이야기) 

황소의 거시기부분을 밟으면? 하하 무슨 일이 일어날까?


중앙통로를 지나 뒤편으로 가면 겉으로 보기엔 그냥 평범한 건물에 불과하지만, 세계 최고의 오페라 무대인 스칼라 극장이 있다. 세계 5개 오페라 극장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며 푸치니와 로시니, 베르디 등 유명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오페라 초연이 있었던 유서 깊은 라 스칼라 좌 의 겉모습은 수수하면서도 품위있다. 이 극장에서 마리아 칼라스, 엔리코 카루소, 루치아노 파바로티 같은 거장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또는 음반으로 보고 들었는데 그 앞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극장 앞 광장 한가운데 밀라노의 르네상스를 이끈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들의 조각상이 서 있다.    


라 스칼라 좌 극장  

라 스칼라 광장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각상

 
아케이드를 한바퀴 돌아나오니 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고 불 밝힌 밀라노 두오모는 마치 황금 사원 같다. 낮보다 훨씬 아름답다.  

그러나 밀라노에 와서 밀라노 두오모의 겉만 보고 가는 이런 여행은 만행이다. 값싸고 손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이런 형태의 여행을 선택한 나 자신이 점점 바보 같아진다.  패키지는 여행의 한 형태가 아니라 그냥 윈도쇼핑이다. 이제 진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닐까?

두오모도 아름답지만 나는 광장이 좋다.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여기로 불러온 걸까? 그들 속에 휩쓸려 아무 생각없이 거닐고 싶다. 하지만 오늘 나는 서너시간을 달려와 겨우 한시간 머무르고 떠난다. 광장은 그렇게 떠나는 나를 놓아주고 또 누군가를 받아들이며 시간을 지켜 내는 곳이다. 다시 이곳에 올  때까지 광장은 그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떠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